주변 모든 사람에게 까칠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남자가 있다. 융통성 없고 구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살을 준비하지만, 이웃집에 이사 온 ‘이상한’ 가족들 때문에 자살도 마음대로 못한다. 얼핏 보면 퉁명스럽고 무서운 아저씨지만, 무심한 듯 이웃을 챙겨주는 모습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베라는 ‘까칠한’ 남자
한 노인네가 다짜고짜 상점에 들어가 아이패드인가 뭔가 하는 컴퓨터를 보여 달라고 점원에게 소리치기 시작한다. 점원이 다양한 옵션에 대해 설명하자 노인은 자신에게 비싼 값을 받으려는 수작이라 생각하고 성질을 부린다. 동네로 돌아와서는 규칙을 모르는 외지인이 거주자 지역으로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막아내더니 쫓아버린다. 이렇게 융통성 없는 그는 집에 들어와 아내사진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보고싶어.”
소설은 오베가 걸어왔던 길을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오가며 풀어간다.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지 결정을 내릴 때가 오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기어오르게 놔두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하는 때가.”
오베가 원리 원칙대로 살며 까칠해질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을 잃었고, 아버지의 직장동료 ‘톰’이 자신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웠으며, 아내에게 끔찍한 사고가 생긴다. 오베가 세상과 싸워야 했던 이러한 사연들은 까칠한 그의 성격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오베는 아버지가 남겨 주신 유일한 집과 차 사브를 무엇보다 아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오베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소냐’. 감수성으로 무장한 그녀는 흑백 TV와도 같았던 오베의 인생을 분홍 꽃다발처럼 환하게 밝혀준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둘의 삶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온다. 임신 중이던 소냐가 오베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불구의 몸이 된 것이다. 슬픔을 딛고 다시금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오베를 향해 도사리고 있었다.
하얀셔츠의 사내들
소냐가 죽을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 자신이 책임지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들. 그녀가 학교에서 일을 하도록 놔두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들.
관료제의 로봇, 하얀셔츠의 사내들은 하나같이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해 그들이 내세운 권위와 조항은 오베의 삶을 갈가리 찢어낼 뿐이었다. 사랑하는 소냐를 위해 오베는 하얀셔츠의 사내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소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보험사와 싸웠고, 교사였던 소냐가 학교에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를 설치하기 위해 시의원과 싸웠으며, 암에 걸린 소냐가 학생들을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했던 학교를 상대로 싸웠다.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말이다.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신문 투고와 민원을 제기하며 하얀셔츠의 남자들과 끈덕지게 싸워나가지만, 소냐는 오베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리고 만다.
오베의 이웃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이의 슬픔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오베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죽음을 결심하게 된다. 자살을 결행하려던 순간, 이웃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온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에게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지켜온 원칙과 소신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다른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말썽을 일으킨다. 그런 그들이 못마땅한 오베는 죽은 아내 생각이 더 간절하다. 소냐는 그를 완전히 이해했던 단 한 명의 이웃이자 친구였던 것이다. 목을 매 자살하려던 그는 방법을 바꿔 차고에서 차의 시동을 켜 놓은 채 배기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시도하는가 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총기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자살은 번번이 실패한다. 오베는 성가신 이웃들의 막무가내 접근에 학을 떼면서도,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난생처음 아내 아닌 타인과 교감하게 된다.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마을에서 오베는 꿋꿋이 자신의 규칙대로 살아간다. 불에 탄 자신의 집을 다시 짓고, 자전거를 고쳐주었으며, 규칙을 무시하는 제멋대로인 주민들과 싸워대면서 말이다. 융통성 없는 오베 덕분에 마을의 평화는 지켜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해결된다. 꼴불견인 이웃을 뒤로하고 그는 아내의 무덤에 가서 덤덤하게 고백한다. “낮에 뭔가 할 일이 있으니까 가끔 꽤 괜찮긴 해.” 어쩌면 소냐가 홀로 남겨진 오베에게 진심으로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오베가 아내 없는 세상도 살만하다고 깨닫는 과정이 따뜻하다.
‘오베’를 위하여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의 골목 안 풍경은 왠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났다. 비록 그 시절은 지금보다 다소 불편했으나, 좁은 집을 나와 골목에서 이웃끼리 정을 나누곤 했다.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을 나눠 먹고, 옥수수를 한가득 삶아 이웃집에 맛 한번 보라고 건네기도 하면서 말이다.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나에게 있어 골목은 마을의 광장이요, 놀이터였다. 화창한 오후,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길을 급히 내달리거나, 화약으로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마을 아저씨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내 자식이 아니라도 누구든 잘못을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곤 하셨다. 무뚝뚝한 첫인상에 까칠해 보이지만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시던 어르신들. 그 시절에는 '오베'가 너무나 흔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오베'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 백주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누군가 약한 친구를 괴롭혀도 누구 하나 선뜻 그들을 막지 않는다. '오베'가 사라진 이 시대의 골목길에는 CCTV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집 담을 높이고 이웃 간의 경계심 또한 높아진 사회를 먼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책은 오베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이기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오베는 자기 삶에 깃든 이웃들에게 곁을 내주었고 이웃을 통해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세상의 모든 '오베'를 위하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