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삶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요즘은 남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답인 것처럼 보인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사회인만큼 어떻게 하면
나만의 삶을 사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너무 남달라도 안 된다.
남들보다 조금 튀는 정도가 되면서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아우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범한 것도 어려운데 평범한듯하면서 그 안에서 빛나기까지 하라니.
그 어려운 삶을 나는 아이에게 은근히 강요하고 있구나를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미대를 나왔지만 전형적인 입시 미술을 ‘외워서’ 그리고 입학한 케이스이다.
나름 창의력을 강조해서 매년 시험 방식이 바뀌지만
학원들은 우리나라 입시제도보다 더 우위에 있다.
그걸 캐치해서 학원은 학생들이 다 외울 수 있게 알려준다.
발 빠른 학원정책이 놀랍기만 하다.
그렇게 바라던 미대 입학을 했더니 웬걸,
점 하나를 찍어도 근사한 감각을 타고난 얘들을 쫓아가기가 버거웠다.
나름 좋은 학점을 받고 졸업했지만, 그 학점의 대부분은 ‘이론’ 과목이었음을 고백한다.
대학생이 된 후 여러 분야에서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적당한 삶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1등은 못해도 중간 이상은 갔고,
대놓고 놀지는 못해도 은근슬쩍 놀던 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주 날라리도, 아주 모범생도 아닌 중간자의 삶이 내 삶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평균치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왜 아이는 남다른 삶을 살아보라며 다양한 육아법을 기웃거리고 있는 걸까?
내가 그 길을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아이에게 가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맞는 것일까.
아이의 기질이 그게 아니라면 단번에 틀어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인가.
내가 다양한 교육과 육아법을 고민했던 이유의 중심엔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 교육이 있다.
뭘 해도 값지게 배울 수 있는 10대 시절,
책상 앞에 10시간 넘게 앉아서 선생님들이 외우라는 것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넣었던 그 시간들이 아깝기만 했다.
그 황금 같은 시기에 많은 경험들을 해보고,
20대부터는 자신의 꿈을 찾아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교육환경이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사교육이 더 많이 생기며
아이들이 학원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
그 시절 책상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용기를 내서 걸어 나왔다면
지금 내 삶은 덜 후회스러웠을까?
© armand_khoury, 출처 Unsplash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늘 바라게 된다.
내가 겪은 삽질은 안 했으면 좋겠고, 좋은 부분은 경험하기를.
그래서 자꾸만 일반적인 교육과 다른 노선을 타고 싶어진다.
자유롭게 놀면서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아이만의 삶의 방식을 찾길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공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을 늘 고민하게 된다.
여기서 ‘고민한다’라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왜 그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지 못하고
나는 [고민]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