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놀만큼 논 것 같은데?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초등 입학 전에 꼭 읽어야 할 부모 필독서를 읽다 보니
왜 이렇게 회초리 드는 말들이 많은 건지.
진짜 놀만큼 논거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음이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니
노는 힘이 아이를 키운다는 공동육아 선배 부모들의 말들도
나를 완벽히 잡아주지는 못했다.
흔들리는 마음에 강력한 태풍이 분 것은
그 시기 즈음해서 놀이치료센터에 1년여 동안 다니게 되면서였다.
아이의 불안도가 높고, 친구들과의 갈등을 버거워 해서
놀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5,6세 때야 아직 어리니까 하고 넘어갔는데
7살이 되니 사회성을 어느 정도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이 생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7세에 무언가를 완성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7세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게 사회성인데!
© krisroller, 출처 Unsplash
‘초등 1학년 형님들은 이제 공부를 해야 한다.’,
‘말도 예쁘게 해야 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등등의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도 꽤 불안해했다.
게다가 아이 기질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마냥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이에게 잘 맞는 것일까,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불안도가 높은 아이는 어느 정도의 선행교육과
적당한 규율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학교 분위기가 많이 자유롭게 바뀌었다 해도
엄연히 학교만의 규율과 짜인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있는데,
날 것 그대로 살았던 아이가 그 환경을 건강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괜찮을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시간들이었다.
자유롭게 키우고자,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자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이
정말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육아법이었는지 마음이 널뛰기를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 약속이 있다.
아이의 생각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것이 옳다고 믿기에
굳이 약속을 깨면서까지 아이에게 선행을 시킬 마음은 나지 않았다.
아이를 붙들고 공부를 시킬만한 정신도 되지 않았다.
(이미 엄마표 했다가 손들지 않았는가!)
그저 내가 한 일은 초등 생활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은근슬쩍 한글, 숫자놀이 책을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둔 게 전부였다.
아이가 오며 가며 본 것들이 머릿속에 잘 저장되기를 바라면서.
뇌가 말랑말랑한 시기이니
나중에 학습도 스펀지처럼 쫙쫙 빨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꿈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 말이다.
다행히 아이의 불안도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고
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한시름 놓았을 때쯤
어린이집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갈 준비가 아직 안된 거 같은데,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 할까’를 일 년간 고민하던 나의 마음을
하늘에서 가엽게 여겨주셨는지,
코로나로 학교 문턱을 밟는 것은 손에 꼽게 되었다.
덕분에 초등 1학년 생활은
학교가 아닌 집구석에서 뒹굴거리며 놀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오히려 ‘제발 등교 좀 하게 해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바라게 되었다.
이렇게 백수처럼 노는 것을 바랐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 이렇게 시시때때로 바뀌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