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영감을 추억하다
요즘 새로 지은 건물 앞에 서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어 간판들이 가득하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저 곳이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 동네에 새로 선 건물 1층은 ‘투ㅇㅇ’ 2층은 ‘ㅇㅇ 피트니스’ 3층은 ‘ㅇㅇ 잉글리시 클럽’ 그리고 옆 건물은 건물명이 ‘골드 ㅇㅇ’이런 식으로 이름이 지어져 있다.
항간에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유행이다.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까? ‘아이스버킷’이니 양동이에 담긴 차가운 물로 뭔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 뜻은 얼음물을 가득 넣은 양동이를 머리 위에서 붓는 일이다. 특정한 병을 고치기 위한 캠페인이나 사회적으로 이목을 끌만한 집단 행위다. 그렇게 해서 뭇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다. 사실 영어에서 버킷bucket 이 가지는 번역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kick the bucket’ 은 ‘자살하다’의 의미다. 천장 서까래에 줄을 매달고 양동이 위에 올라가 있다가 양동이를 발로 차는, 그래서 목이 조여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뜻이다. 저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브룩스 영감은 수십 년을 교도소에서 살다가 가석방 된 후 급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kick the bucket'을 실행한다. 그러한 이유로 ‘버킷리스트’ bucket list 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적은 글이다. 그래서 ‘세상을 버리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위시리스트 wish list’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위시wish는 가능성이 낮거나 불가능한 일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위시리스트 wish list를 우리말로 바꾸면 ‘소원목록’이 된다. 죽지 않겠다는 강한 긍정의 힘을 가진다.
주변에 긍정의 에너지를 무한하게 내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핵인싸’라고 한다. ‘핵’은 ‘핵심’을 의미하고 ‘인싸’는 영어 인사이드 inside에서 가져왔다. 그러니 어떤 모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도통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들을 영어와 우리나라 말과 혼용하여 쓰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뿐인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만땅’이라는 말도 쓴다. 가득 찰 만‘滿’에서 ‘만’자를 가져오고 ‘땅’은 영어 ‘탱크’ tank에서 왔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 조합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라 하겠다.
줄임말도 너무 유행하고 있다. ‘갑분싸’라는 말을 아직도 모른다면 어떤 장소에서 정말 ‘왕따’가 될 수도 있다. ‘갑’은 ‘갑자기’ ‘분’은 ‘분위기’ ‘싸’는 ‘싸하다’가 의미가 있으니 내가 어떤 말을 했는데 누군가가 ‘갑분싸’ 한다면 나를 돌아볼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을 하며 라디오에서 ‘사개특위’와 ‘정개특위’에 국회의원인 누군가가 임명되었다는 아나운서의 뉴스를 들었다. 나만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임말을 여지없이 쓰는 매스컴을 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하다. ‘사개특위’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줄임말이고 ‘정개특위’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란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들으시면 참으로 노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읽는 과정에 여러 번 내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 위에 ‘캠페인’부터 시작해서 저 아래 ‘매스컴’까지 나도 한글화된 영어를 쓰지 않고는 글을 적을 수 없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