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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Jun 08. 2020

기억 저 편

기억 저 편 


 ‘유독 중학교시절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초등학교 시절과 고교시절은 너무도 선명한데 말이다. 녀석과의 만남으로 그 답은 아주 간단하게 풀려버렸다. 


 유명 상표가 가슴께에 선명하게 새겨진 점퍼를 입은 녀석은 가방도 없이 상담실에 앉았다. 중학생의 앳된 얼굴이지만 눈만큼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출석부 정리를 마치고 컴퓨터를 끈 다음 조심스럽게 녀석과 길을 나섰다.

 금호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공단을 지나 작은 등성이를 하나 넘으니 녀석이 사는 동네가 나타났다. 여기가 대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동네는 한적했다. 버스 종점 옆길로 들어서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눈에 띄었다. 탁자가 하나 놓여있는 구멍가게 앞에는 막걸리가 가득 담긴 상자와 가스통을 이어놓은 가스레인지가 눈에 띄었다. 공사판에서 막 돌아 온 인부들이 어묵 국물에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게 뭔지 물어 귤을 한 봉지 샀다. 녀석이 일부러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한참을 돌아 온 것 같았다. 제법 큰 집 앞으로 나를 안내하는 아이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다 왔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색 대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빗장을 재껴 능숙하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마당을 가로 질러 야외화장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일층에만 여섯 가구가 모여 산다고 했다. 앞이 꽉 막힌 파란색 플라스틱 슬리퍼와 너덜너덜한 한 켤레의 농구화가 눈에 띄었다. 미닫이문을 열자 두 평이나 될까한 거실이 주방과 함께 보였다. 작달막한 키의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다 말고 뭔가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불안한 감을 감추지 못하셨다.  


 녀석은 며칠 전 하교하던 하급생 아이에게 겁을 주고 돈을 빼앗았다. 그리고 급기야 길가에 세워 둔 오토바이에까지 손을 댔다.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선생님이 대신 나오라는 경찰서의 연락을 받았다. 경찰서를 나오며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매운 고추를 된장에 찍어 아무렇지도 않게 먹더니 순식간에 바닥을 비워냈다. 길을 가다 보니 고장이 난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어서 가는지 안 가는지 궁금하여 타 보았는데 신통하게도 잘 움직이더라는 게 녀석의 변이었다. 등록금과 보충수업비가 다 무상으로 지원이 되고, 심지어는 점심시간에 먹는 급식비까지 다 지원이 되는데 뭐가 부족해 남의 물건에 손을 댔느냐며 따지듯 물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쇠귀에 경 읽기 하는 것 같아 지금까지 지원해 준 게 아까웠고 학용품비나 밥값으로 들인 정성이 허무해졌다. 


“저 애미 애비가 없으니 어쩌겠어요? 가족들끼리 참 재미나게 살 땐데...”

“할머니, 별 일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한 번 와 본 겁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는 그냥 녀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여 가정방문을 했다며 가져온 귤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소매가 헤어진 저고리 밖으로 나온 까맣게 주름진 손으로  연신 눈가를 닦아내었다. 여러 번 사고를 친 녀석의 전력을 할머니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두 칸의 방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큰방은 열려져 있었다. 할머니가 쓰는 방은 작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녀석의 방이 궁금했다. 녀석의 방문을 열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나는 작은 방의 손잡이를 돌렸다.




 나는 내 방을 가지고 싶었다. 열평 남짓한 가게에 딸린 방은 미닫이문으로 나누어져 두 개로 만들어져 있었다. 군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산업화가 한창이던 80년대 초에 중동지역으로 전기기술자로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다리를 놓아 주겠다는 이웃 아저씨의 말에 속아 퇴직금을 모두 날려버렸다. 겨우 자전거 한 대로 인근 공사판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분식점을 차리셨다. 가정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는 대학생들에게 라면과 비빔밥 등을 만들어 파셨다. 어쩌다 단체 손님이라도 오게 되는 날에는 안방은 손님들의 차지가 되었고 밤늦은 시간까지 막걸리와 소주냄새가 진동을 했다. 안방 미닫이 문 하나를 열면 바로 작은방이었는데 동생들과 나는 그 방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느덧 잠이 들곤 했다.


 녀석의 방문을 열자 골방의 곰팡이 냄새와 중학생 시절 그 때의 힘들었던 세월이 나의 가슴속으로 물밀듯 밀려들었다. 비키니 옷장이 한 중간을 차지한 방에 다리가 하나 부러진 책상위로 책들이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초겨울이라 서늘한 날씨였지만 따뜻한 온기를 가져다 줄 기름도 없는지 전기장판하나가 덩그러니 바닥에 깔려져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들른다고 했다. 불경기가 계속되어 일거리도 별로 없을뿐더러 일이 있어도 타지방에 있어 여관을 전전하며 돈을 번다고 했다. 이혼한 어머니는 연락만 할 뿐 경제적 보탬은 어렵다는 것이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앉아 있는 엉덩이로 냉기가 스믈스믈 올라왔고 마른기침이 나올 듯 목이 간질간질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중학교에 근무를 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그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방과 떨어져가던 연탄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늦은 귀가를 하시던 아버지와 나의 중학생 시절. 내가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 것 같이 아이는 지금 그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기술을 배우는 전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한 살 한 살 더 나이를 먹으며 그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것이다.

 괜찮다는데도 아이는 굳이 나를 바래다준다며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나섰다. 잠바도 입지 않은 아이의 어깨가 다부져 보였다.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쏟았던 정성이 아깝지 않았다. 아이가 오늘 밤 깊은 꿈을 꾸길 바랬다. 버스 종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어두운 마을을 서둘러 벗어나려는 듯 힘찬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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