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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Jun 08. 2020

태양광 에너지

아버지는 늘 집안의 태양이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정말 얼굴이 태양같이 빛났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만 보고는 바로 시집을 갈 거라며 외할머니를 졸랐다 했다. 사실 나에게도 아버지는 태양이었다. 90시시 혼다 오토바이 뒤에 앉으면 아버지는 헬멧을 씌우고 꽉 잡아라 하시고는 쏜살같이 거리를 누볐다. 당시에는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자가용이 있는 집은 동네에서 한두 집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내 자부심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며칠 전 태양광 에너지를 설치하는 게 어떠나며 전화를 해 오셨다. 한 때 수성 금성 지구와 같은 여러 행성을 거느리며 당신을 중심으로 집안을 이끌어 오신 아버지의 뜻이니 선뜻 알아보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의 아우라가 빛나던 시절에는 주위의 모든 집안 대소사는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의중대로 해결되었다. 아무리 어머니가 말리고 고모나 이모들이 만류를 해도 아버지는 그런 것들은 잠시 걸리적거리는 사소한 해무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간혹 일이 잘 못 되는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먹구름이 온 집안을 뒤덮었다.


첫 번째 사건은 중동 사건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로 일하러 가신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군부대의 군무원으로 일하시면서 익힌 전기 기술로 그 먼 나라로 가면 군무원의 서너 달 치 월급이 한 달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 곳은 태양이 너무 뜨거워 사람이 살 수도 없고 물도 잘 안 나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어머니는 한사코 아버지를 말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기어이 퇴직금과 더불어 신청서를 내었는데 사실은 그 업체가 사기꾼들이 모인 업체였고 중동으로 가는 비행기는 뜨지 않았다. 그 때부터 태양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고 잘 되는 사업도 네 아버지가 손을 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망조가 든다는 거였다. 그 날 이후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안에서 슬슬 커져갔다.


두 번째 사건은 전기회사 사건이었다. 아버지가 몇몇 동업자들과 같이 전기 합자 회사를 만든 것이었다. 큰 건물을 지으면 그 건물에 전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조명과 전기 등을 다 넣자면 제법 큰돈이 미리 들어가는 것이었다. 몇 차례의 공사가 성공적이었고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승용차로 바꾸는 변신을 하셨다. 제법 돈이 들어 올 때라 햇살이 제법 뜨거운 포항으로 이모와 삼촌들이 포함된 온 가족을 동반하여 일박이일의 해수욕도 다녀오는 호기를 부리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업자의 야반도주로 졸지에 아버지는 장마와 같은 긴 암흑기에 들어서게 되셨다. 물론 우리들의 입성이나 어머니의 가정 경제가 파탄지경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태양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또 달도 그냥 달이 아닌 보름달이 뜬 거였다. 집안에 달과 태양이 당연히 있어야하고 태양이 더 빛나야 했지만 우리 삼남매는 서쪽으로만 기울어가는 태양과 휘영청 밝은 달이 빛나는 약간은 비정상적인 우주속에 버려진 선인장 같았다. 숨죽이고 겨우 호흡만 유지하는 수준의 생활이 시작된 거였다.


어머니는 식당으로 제법 수완을 발휘하셨다. 점포가 딸린 상가주택도 하나 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세를 주지 않고서도 내 집에서 장사를 하실 수 있게 되었다.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이 되어 태양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개기일식처럼 완전히 집안을 장악하셨다. 아버지는 달에 가려져 힘이 빠져 빛나도 빛이 나지 않았다. 보름달도 아이엠에프 경제라는 나라의 구조적인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이 기울어 어머니의 식당마저 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 때는 이미 나도 삼십 줄에 접어들어 식솔이 딸린 처지였으니 먼데서 쳐다볼 뿐 감히 태양과 달 사이에 끼어들거나 할 만한 사정은 되지 않았다. 두 분만 잘 살면 될 일이었다.


태양과 달의 싸움이 조화롭게 된 건 아버지의 마지막 직업 덕택이다. 아버지의 삶은 요즘 학원차 운전으로 바쁘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지금이 네 아버지 전성기다. 꼬박꼬박 몇 푼이라도 월급이라는 걸 받으시니 보람도 되고 뿌듯해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군무원을 계속 했더라면 연금이라도 매달 나올 텐데 라며 한숨도 지으신다. 바야흐로 황혼 무렵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며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이는 사위어지는 태양의 마지막 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살아오신 세월도 우리도 세상도 불그스름하게 변하게 하는 태양의 능력. 아버지의 노년이 새로 설치되는 태양광으로 더욱 빛날 차례다. 모든 행성들이 같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는 태양의 공전의 질서로, 세상의 모든 자연과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석양의 아름다움으로 아버지의 노년이 더 눈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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