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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Jul 05. 2020

42번과 숨겨진 인물들

노예와 영웅에 대하여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1960년대 우주개발 초기에 미국 항공우주국인 나사(NASA)에서 일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히든(hidden)'은 '숨겨진'이죠. '피겨(figure)'는 숫자, 수치라는 뜻과 함께 '인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숫자들' 또는 '숨겨진 인물들'로 해석이 됩니다. 수학을 싫어하는 저에게 수학이 왜 필요하지 확실히 알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수학이 왜 필요해? 쓰이는 데가 있나요?라고 반문하실 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 수학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샜군요. 사실 이 영화는 수학보다도 인종차별을 이긴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2008년에 미국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패전 전문 처리 투수가 된 박찬호 선수가 미국에 있었는데요.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그의 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팀을 응원했었죠. AT&T 파크는 코카콜라병 광고 조형물이 야외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서 유명하기도 하지만 장외홈런이 터지면 공이 바다에 떨어지는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것은 흑백의 구분이었습니다. 3루 내야석과 야외석의 구분은 그저 노란 선 하나였고 가격차이가 제법 났습니다. 내야석은 거의 5만 원 정도였고 외야석은 만원 내외였는데요. 그 노란색의 선을 따라 내야석은 지정좌석이 정해져 있었고 외야석은 그냥 서서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거짓말처럼 내야석에는 백인들이 앉아있었고 외야석에는 흑인들이 서 있었죠. 지금도 저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티브이로 볼 때면 포수에게 꽂히는 야구공이 아니라 포수 뒤에 얼마나 많은 흑인이 있나를 헤아려 봅니다. 정말 흑인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손가락 몇 개 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그 숫자에 아마도 놀랄 겁니다.

오른쪽 밑에 흑인이 보이신다고요, 그는 지금 맥주를 팔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용구장인 AT&T Park입니다.

미국 흑인의 역사는 노예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흑인들의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노예였던 할머니로부터 제대로 된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나사(NASA)에서 일했던 수많은 천재들 중에는 흑인도 있었다'라고 적고 보니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흑인이면 수학을 못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듯해서 더 그렇습니다.


자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해 보겠습니다. 임시 계산원인 캐서린은 뛰어난 수학천재이지만 흑인 여성입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죠. 하지만 로켓이 궤도를 돌아 지구 어디에 착륙하는지에 대한 포물선 계산을 멋지게 해냅니다. 나사(NASA)의 소장인 헤리슨은 그녀에게 주목합니다. 하지만 매일 여러 차례 40분씩 사라지는 캐더린을 붙잡고 소장이 묻죠.


헤리슨 소장 : '도대체 어딜 갔다 오는 거야?'(Where the hell have you been?)

캐더린 : 화장실요, 여기는 제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요.

(To the bathroom, sir. There is no bathroom for me here.)


1960년대의 인종차별이란 유색인종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따로 정해져 있어서 보통의 화장실 사용이 불가능하였습니다. 흑백이 분리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 거죠. 헤리슨 소장은 당장 흑인 여성전용 화장실(Colored Ladies Room) 안내표지를 부숴버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나사에서는 모든 인간이 같은 색깔의 소변을 본다.'

(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뒷얘기는 남겨두겠습니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자, 또 한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42', 뜬금없는 숫자냐고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장에 모든 선수들이 이 번호 '42'를 달아야만 하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재키 로빈슨 데이(Jackie Robinson Day)'입니다. 42번은 메이저리그의 어떤 선수도 달 수가 없는 영구결번 번호입니다. 그 42번의 주인공이 바로 '재키 로빈슨'입니다. 1947년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은 최초의 메이저리그 흑인 야구선수가 됩니다. 인종차별의 벽을 허문 거죠. 그에게 최초라는 말은 정말 어마어마한 고난을 겪었다는 얘기입니다. 그가 최초로 입단한 팀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엘에이 다저스(LA Dodgers)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였습니다. 숙소나 식당 화장실을 따로 쓰는 건 당연한 거였죠.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팀의 모든 선수들이 42번을 달고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역경을 이기고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제정된 신인왕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메이저리그 입성은 이후 모든 유색인종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박찬호 선수나 류현진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는 건 다 그의 인내 덕택이죠.

2009년 8월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경기 중 불펜에 나온 박찬호 선수(AT & T 파크)

우리나라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프로야구선수들도 있죠. 우리 주변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건설현장에, 배 위에, 공장에, 시골 밭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할까요? 마음속으로 그럼, 나는 그들을 공정하게 대한다고 생각해,라고 하시겠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미국에서 원어민 교사나 미군들, 또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나요? 모두가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은 제 스스로부터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영화 '42'의 오말리 구단주(해리슨 포드)는 이렇게 말하죠.

'Dollars aren’t black and white. Every dollar is green.'

'달러는 검거나 희지 않아. 모든 달러는 녹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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