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사늘하다. 이럴 때 감기에 걸리기가 십상이다. 목이 칼칼하면 꿀차가 제격이다. 특히 아카시아꿀은 그 향이 좋아서 더 즐긴다. 달콤하기도 하고 쌉싸름한 것이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간다.
『고운당필기』 제4권에 「단 것은 엿뿐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글이 있다.
옛날에 어느 양반가에 말을 관리하는 마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마부의 어미가 아들을 만나러 왔다. 여든이 넘은 어미에게 대감의 딸이 꿀을 대접하였다. 꿀을 처음 먹어 본 어미는 아들에게 “내가 꿀을 먹어 봤다. 일찍이 꿀이 다디달다고 듣기는 했지만, 엿보다 더 달지는 않으려니 했는데, 지금 먹어 보니 단맛이 비길 데가 없구나. 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필시 마부의 어머니는 꿀을 처음 먹어 보았음이 틀림없다.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천상의 맛을 보았더니 지금까지 가장 맛있게 여겼던 엿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을까, 그 맛이 기차게 달았을 것이다.
옛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늘 그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노파에게 꿀을 대접하는 주인집 딸을 눈여겨볼 일이다. 그녀는 노파에게 신세계를 열어준다. 허름한 옷을 입은 종의 어미에게 꿀을 대접하는 주인집 딸이라니. 당시에는 양반과 평민의 계층 구분이 명확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녀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지극하다. 어머니를 저렇게 극진히 환대하는 주인집 딸을 본 마부는 주인의 말을 돌보는데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주인집 딸의 행동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틀림없다.
또 다른 한편의 이야기가 있다. 옛날 중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전투가 한창일 때 한 병사가 그만 다리에 종기가 생겼다. 그러자 그 부대의 장군이 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서 빼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장군의 부하 사랑에 어머니가 감동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병사의 어머니가 운 것은 감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장군의 정성에 반한 아들이 장군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의 스타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장(智將)일 수도 있겠고, 덕장(德將)이거나 용장(勇將)일 수도 있겠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그는 천하를 얻었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디에서 누군가 꿀차를 내놓는다면 주의하시라. 그가 당신의 마음을 훔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