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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게으름뱅이

by 홍생

경기가 한창이다. 메달을 따는 선수들이 대단하다. 수년에서 수십 년간 하나의 일에 집중한 결과다. 아마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음이 틀림없다. 게으른 사람들은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옛이야기에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겨울날 아무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아들을 본 어머니가 화가 나서 뭐든지 해 보라며 아들을 밖으로 쫓아냈다. 쫓겨난 아들이 골목을 어슬렁대다 보니 마침 소의 탈을 만드는 노인이 있었다. 아들이 그걸 한 번 써 봐도 되느냐고 묻자, 노인이 탈을 내밀었고 소가죽도 등에 얹어 주었다. 그러자 게으름뱅이는 즉시 소가 되었고, 노인은 우시장에 가서 그를 팔아버렸다. 다만 소를 산 농부에게 이 소에게 무를 먹이면 소가 죽으니 절대로 무를 주지 말라고 했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봄에는 내내 밭을 갈고, 여름에는 무거운 수레를 끌었다. 너무 힘든 생활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되었다. 이렇게 살면 뭐 할 것인가, 하고는 차라리 죽을 마음으로 스스로 무밭으로 가서 무를 캐 먹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다시 사람이 되었다. 그 후로 그는 부지런히 일해서 잘 살았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사람은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게으른 사람들이 있다. 지각하는 사람은 늘 지각하고, 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늘 기일을 맞추지 못한다.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적 성향 탓이지 싶다. 물론 게으르다고 해서 꼭 잘못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면 느릿하게 일을 처리해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성실한 사람들을 우리는 좋아한다.


게을러 아무 일도 하지 않던 게으름뱅이가 깨달음을 얻어서 결국은 열심히 일해서 잘 산다는 얘기다. 하지만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속 깊은 교훈을 준다. 어머니가 아들을 쫓아내는 장면을 보라. 언제까지나 자식을 품에 안을 수 없다. 부모가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무엇이든지 하도록 기회를 준다. 두 번째는 게으름뱅이가 다시 사람이 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게으름뱅이에게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죽을 마음이면 살아나는 것이다. 무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죽는 일이 사는 일이라며 간절하게 그 길을 택한다.


모든 일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은 게으르게 쉬엄쉬엄해도 된다. 그러나 어떤 일이 내가 죽을 만큼 힘든 일이라면 오히려 용기를 내어서 한번 도전해 볼 일이다. 죽는 일이 사는 일이고, 사는 일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늘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고 사는 일이 있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악착같이 덤벼야 한다. 그래야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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