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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06. 2024

빈대

  유럽에 빈대가 출몰해서 관광객들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시원을 중심으로 빈대가 보인단다. 찜질방이나 쪽방촌에도 빈대들이 출현하는가 본데 한 번도 빈대를 본 적이 없는 내 몸이 저절로 근질근질하다.


  옛이야기에 빈대 이야기가 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아버지가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포악한 거인이 잡아간 것이었다. 산신령이 아들의 꿈에 나타나서 빈대 한 말, 벼룩 한 말, 바늘 한 말을 가지고 가면 거인을 퇴치할 수 있다고 한다. 아들은 산신령의 말을 듣고 거인의 집으로 가서 빈대로 거인을 간지럽게 하고 벼룩으로 거인을 괴롭히다가 바늘로 콕콕 찔러댔다. 견디다 못한 거인이 주문을 외우고는 아주 작아져서 가마솥에 들어갔고 아들이 솥뚜껑으로 막아 버렸다. 그 거인의 집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해서 나무꾼과 아들은 부자가 되었다.


  효자 아들이 포악한 거인을 물리치고 부자가 되는 권선징악의 대표적 이야기다. 어떤 이본에는 어머니가 납치되어서 딸이 어머니를 구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거인이다. 거인은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을 잡아가거나 길 가는 여자를 납치한다. 그러므로 거인은 당대에 가장 힘이 있던 권력층이겠다. 그런 권력층에 대항하는 것들을 살펴보시라. 빈대와 벼룩과 바늘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피를 보게 하는 것인데, 빈대를 붙어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난다, 와 같은 속담에서도 알다시피 공통점은 작다는 것이다. 작은 것을 괴롭히는 큰 것은 반드시 망한다. 거인은 자신보다 작은 나무꾼과 여자를 끌고 가서 괴롭혔다. 결국은 작은 것들이 들고 일어나서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마지막 부분이 전달하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거인도 사실은 작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마술적 힘으로 커진 거인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종말을 맞았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산신령이 나타나서 아들에게 빈대 한 말, 벼룩 한 말, 바늘 한 말을 구하라고 한 대목이다. 아무리 빈대가 많다고 해도 한 말이라니, 한 말은 한 되의 열 배가 아닌가. 대략 18 리터 정도다. 거기에다가 빈대를 다 채우려면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지 않았을까.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딸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나선 세월이 그 정도라면 이미 거인은 죽은 목숨이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나서서 병구완하는 아들이나 딸도 없지 싶다. 주변에 큰 건물이 지어지면 요양원이라는 이름을 다는 경우가 제법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 수십 년을 빈대 붙어 피를 빨아먹고 살았는데, 내 몸이 좀 커졌다고 노치원 다니시는 부모님을 너무 편하게 생각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혈관은 왜 좁아졌는지, 아버지의 간은 왜 그렇게 굳어졌는지, 자꾸만 바늘을 허리에 꿰는 어머니의 침침한 눈에는 왜 자꾸 하얀 것들이 어른거리는지, 빈대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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