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아하! 모멘트’ aha, moment라는 말이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다. 테니스를 치러 다니다 보면 어느 날 그런 날이 온다. 상대에게 서브를 넣는데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가는 경우다. 더블 폴트(연이은 서브 실패)를 밥 먹듯이 하다가도 그런 날은 신들린 듯 강서브가 들어간다. 그러면 상대 선수가 “요즘 어디 전지훈련 갔다 오셨나요? 그분이 오셨나 봐요,”하고 치켜세운다.
『어우야담』에 전하는 이야기다.
심의沈義가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문리 文理가 터지는지 물었다. 친구가 말하기를 문리가 터지려면 ‘탁’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두문불출하고 독서했다. 이로부터 5~6년 동안 틀어박혀 공부하면서 ‘탁’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계집종이 무슨 일을 하려고 사기그릇에 불을 담아 가지고 부엌에서 나오다가 그릇이 불에 달구어져서 탁 소리가 나면서 깨졌다. 방 안에서 글을 읽던 심의가 그 소리를 듣고는 드디어 문리가 터졌다고 좋아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후 과거를 보아서 급제했다.
문리가 터지려면 ‘탁’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친구이니 좋은 친구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심의는 그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어떤 우연이 그의 공부와 겹쳐 그의 문리가 터졌다. 심의가 공부하는데 계집종의 사기그릇이 불에 달구어져 ’탁‘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중에 과거를 보고 급제까지 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면 대부분 ’우연의 일치‘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심의가 ’두문불출하고 5~6년 동안 틀어박혀 공부했다. ‘라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 5~6년 동안이라면 깨진 사기그릇이 몇 개나 되었을 텐데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드디어 듣게 되었다. 아마도 이미 읽고 또 읽었던 책을 보고 있었으므로 그는 새삼 여유가 생겼지 싶다. 그랬더니 평상시엔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어떤 일을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적어도 5~6년은 되어야 겨우 뭔가를 깨칠 수 있다는 성현의 가르침이다. 나도 이제 테니스 밥을 먹은 지 대충 6년이 넘어간다. 아마도 그 기간의 보상으로 그날의 공이 강서브가 되었지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고수가 너무 많아서 겨우 서브 하나로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심의가 5~6년 공부에 겨우 과거 급제를 했지만, 칭송받는 관리로 거듭나는 데에는 수십 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오늘도 세 게임 연패했으니 같이 파트너가 되었던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고작 서브 하나만 깨쳤으니 발리 연습도 해야 하고 스트로크 연습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탁‘소리와 함께 오실 그분을 만나려면 오로지 연습만이 살길이다.세상 일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