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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08. 2024

학문 < 떡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갈등이 심하다. 하마스가 축제 현장을 덮쳐서 서방의 일부 국가 사람들과 이스라엘 국민을 포로로 잡아갔고 이스라엘이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아닌 외국에 살던 수많은 유대인이 징집영장을 들고 공항에 모였다. 독일에서도 많은 수의 유대인 장정들이 모였는데, 이스라엘 공항 사정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이스라엘이 활주로를 개방했고 비행기가 다시 뜬다는 소식에 그들이 손을 마주 잡고 환호했다고 한다.


  『어우야담』에 전하는 이야기다.

  중국 사신이 떡보를 만났다. 사신이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었더니, 떡보는 네모를 만들었다. 사신이 다시 손가락 셋을 꼽아 보았더니 바보는 다섯 개를 꼽았다. 마지막으로 사신이 옷을 가리켰더니 떡보는 입을 가리켰다. 사신은 역시 조선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치켜세웠다. 접객관이 그 이유를 묻자, 동그라미는 하늘이 둥글다는 것인데 저 장부는 땅이 네모나다고 했고, 손가락 세 개는 천·지·인을 뜻함인데 장부가 다섯 개를 폈으니 인·의·예·지·신 오륜을 안다는 뜻이며, 옷을 들어 보임은 의상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인데 입을 가리키니 말세에는 구설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라며 장부의 대단함을 칭찬했다. 사실 떡보는 둥근 떡을 먹었냐고 해서 네모난 떡을 먹었다고 말했으며 세 개를 먹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다섯 개를 먹었다고 답했으며 옷이 중요하냐고 묻길래 나는 먹는 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다. 중국 사신은 자신이 아는 지식만으로 떡보의 손짓을 이해했고 떡보는 자신이 좋아하는 떡으로만 세상을 보고 산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배운 지식으로 동문서답했지만, 결과는 떡보의 승리로 끝난다. 중국의 사신이 조선의 바보에게 속았으니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뜻밖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깊은 학문을 터득한 중국의 선비가 온다고 하자 조선의 선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괜히 중국 사신을 대적했다가 된통 당할 수도 있고 자칫 학문의 지경이 깊지 않은 사실이 탄로 날 일이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무관들마저도 나서지 않았으니 가장 힘없는 평민이 나라를 지킨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늘 바보라고 불리며 떡을 좋아하는 떡보가 중국의 사신을 대적했을까? 


  평상시에 잘났다고 소리를 내고 떵떵거리는 사람들이 위기가 닥치면 모두 숨어버리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승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각자가 삶의 터전에서 교수로 의사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그들이 자신의 조국이 전쟁을 선포하자 일제히 모였다니 더 할 말이 없다.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한가운데 있어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나도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긴 하는데, 사실 어디 한군데 뛰어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저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되어 다행이다. 그런데 떡이 생기는 일이라면 가끔 큰소리를 낸다. 역시 학문보다는 먹는 것이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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