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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09. 2024

섣달그믐의 쓸쓸함에 대해 논하라


  올해 고3 담임을 맡았다. 어느 학년을 맡느냐 하는 것은 관리자들의 의중이 중요하지만, 요즘은 원하는 학년을 맡기는 경향이다. 작년에 중학교 1학년 담임이었는데 올해는 고3 담임을 맡았으니까, 승진치고는 초고속 승진이기도 하다. 고3 담임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고 하는데 실은 아이들이 이미 자신의 목표대학과 학과를 결정지어 놓았기 때문에 수월한 측면도 있다. 물론 중요한 결정의 시기이므로 일 년간 담임하면서 여러 가지 진학지도에 신경 쓸 일도 많다. 그래도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차 관문을 통과하도록 도와주는 일이고 진학이 잘 되었을 때는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요즘 교사들은 사실은 담임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우선 생활기록부 작성이 어렵다. 대학들이 생활기록부를 참조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뽑으려 하므로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대학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물론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들도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 사항을 적으려면 힘이 든다. 그래도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에다가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을 작성하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이른 졸업식을 하고 아이들과 작별했다. 아이들이 떠난 텅 빈 교실을 정리하고 돌아 나올 때는 그 쓸쓸함이 여간 아니다. 일 년간 복닥복닥하던 교실이 텅 비어 있음에랴 뭐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졸업식을 보기 위해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다 들어와서 빈틈없어 보이다가 물밀듯 빠져나가 공기가 무겁도록 내려앉은 빈 교실을 보면 마음이 서운하다.


  광해군 8년인 1616년 증광회시가 있었다. 한 마디로 수능과 같은 시험이라고 보면 되겠다. 지금이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시험 문제를 내지만 당시에는 좀 달랐다. 마지막 대과를 치를 때는 임금이 직접 시험 문제를 냈다. 그날의 시험 문제는 광해군이 출제했는데, '섣달그믐이 쓸쓸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적는 철학적인 문제가 출제되었다.


  물론 지금도 논술 시험을 치르는 대학교가 제법 있다. 대부분 서울의 상위권 대학과 일부 지방 국립대학에서는 여전히 논술로 학생들을 가려 뽑는다. 그러나 그 논술 문제라는 것이 이과 계열의 경우는 대부분 수학 문제이고, 문과 계열의 경우는 학과마다 문제가 다양하다. ‘섣달그믐의 쓸쓸함에 관해 논하라’라는 문제를 낸다면 아이들이 머리를 갸우뚱하지 싶다. 우선 ‘섣달’이 몇 월인지 모르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믐’은 또 어떤가, 제대로 대답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당히 어려운 논술 문제라 하겠다. 혹, 두 가지 뜻을 다 안다고 하더라도 '쓸쓸함'에 관해 적으라고 하면 번호를 선택하는 선택형 문제에 익숙한 아이들이 혀를 내두를 것이 뻔하다.


  광해군은 조선의 임금 중에 묘호(사후 공덕에 따라 받게 되는 호칭)를 받지 못한 두 임금 중의 한 명이다. 연산군이야 워낙 폭군이니 왜 그가 묘호를 받지 못했는지는 잘 알 터인데, 광해군이 묘호를 받지 못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 인조반정에 의해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그의 치적이 본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대동법을 시행했으며 중립 외교를 펼쳤고, 세자일 때는 의주로 도망간 아버지 선조 임금 대신 조정을 맡아서 전장에서 왜군에 맞서 싸운 인물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런 그가 왜 그런 책문을 내었을까?


  임금이라면 당연히 만백성으로부터 존경받고 신하들로부터 믿음직한 왕이 되어야 마땅했는데, 실리에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한 일종의 세력을 형성했던 분당이라는 조선의 상황이 그를 힘들게 했던가 보다. 한 해가 즐겁고 태평천하가 되었더라면 ‘올 한해 잘 보냈으니, 새해에는 더욱 잘살아 보자.’라며 잔치를 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었다. 주변에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한둘만 있었어도 그렇지 않았을 텐데 그에게는 제대로 된 신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가 그런 책문을 냈을 때, 그의 의중을 알아보는 신하가 없었음이 참 안타깝다.


  예전과 다르게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젊었을 때 느껴보지 못한 어색한 감정을 요즘은 좀 많이 느낀다. 아마도 광해군 시절이었다면 장원은 못 하더라도 입선은 하지 않았을까, 그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 '쓸쓸함'으로 통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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