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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10. 2024

구렁이의 보은


  살면서 큰 위기가 한 번 있었다. 결혼은 했고, 큰아이가 두 살, 작은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덜컥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테지만 당시에는 젊은 혈기가 있었고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참거나 견디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한마디로 생각이 얕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회사를 그만두자 아니나 다를까 아이엠에프가 닥쳤다. 퇴직금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자연히 친구 관계도 소원해졌다. 만나려고 해도 커피값도 없었으며 기름값도 간당간당한 시절이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선배가 한 명 있었다. 넉넉한 인심으로 나를 받아주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로 인해 일부분 상쇄되었다. 그 후 나는 학원 강사와 시간강사, 기간제 교사를 거쳐 정교사로 임용이 되었다.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어렵게 베를 짜서 팔아오라고 시장에 보냈다. 선비는 베를 팔아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구렁이 한 마리를 중간에 두고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선비는 구렁이를 살려주면 밥값을 다 내겠다고 했다. 결국 선비는 베 판돈으로 밥값을 다 내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상심한 아내가 풍수용 패철을 주면서 지관이라도 해 보라며 남편을 내보냈다. 마침 어느 대갓집에 초상이 났는데 풍수가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선비는 얼떨결에 그 집에 가서 밥을 한 그릇 얻어먹었다. 그때 거지 아이가 들어와서 밥을 구걸했다. 선비는 자기의 밥을 나누어주었다. 그랬더니 이 꼬마가 묏자리를 알려주었는데 과연 명당이었다. 여러 번 아이의 도움으로 돈을 벌어 선비는 부자가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꼬마는 구렁이였다. 그 후 구렁이는 승천해서 용이 되었다.


  상부상조형의 보은담이다. 누군가 내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나도 그에게 보답한다는 내용이다. 목숨을 살려주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 한마디 말이나 한 줄 글이 큰 깨달음이 되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구렁이를 중간에 두고 죽이려 하지만, 한 사람의 도움이 구렁이를 구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주위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을 두고 모두가 그를 빙 둘러싸고 그를 비난하는 경우 말이다. 그럴 때 선뜻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설 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시작은 가난한 선비다. 가난한 선비가 가족들이 먹고살아야 할 돈으로 구렁이를 살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가난한데도 더 가난한 것들을 돌보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뿐만 아니다. 선비가 초상집에 가서 앉아 있을 때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거지 아이에게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나눔과 배려다.


  그때를 돌아보면 나는 거의 용이 된 것 같다. 물론 교사가 무슨 용이냐, 하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 시절이 정말 비참했다는 말이다.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랬기 때문이다. 가끔 그를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한다. 요즘은 여러모로 힘든 처지에 있는가 보다. 그래도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선배를 보면 곧 오뚝이처럼 우뚝 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믿음도 결국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마음먹는 일이란 참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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