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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05. 2024

조선 도서관의 시작

『용재총화』의 저자, 성현의 책 읽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좋은 이유가 많다. 일단 무척 조용하다. 아파트 속집이라서 자동차 소음이나 잡다한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 또 아랫집 윗집을 잘 만나서 층간 소음이 전혀 없다. 복이 아닐 수 없다. 집에서 십 분만 걸어 나가면 두루미와 수달, 잉어가 가득한 신천을 걸을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일은 한 삼십 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이 두 개나 있다. 범어 도서관과 국채 보상 기념 도서관인데 책을 좋아하는 나의 주머니 사정을 덜어주기도 하고 편안한 휴식의 공간도 되어서 그 기쁨을 말로 할 수 없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성현은 부잣집에서 자랐다. 천성이 독서를 좋아해서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구하지 못한 것이 없고 읽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방에는 베개도 되고 자리도 될 만큼 책이 가득했다. 평생 몸에 이가 많아서 독서하는 중에 이를 잡으면 책장 속에 끼워 넣곤 했다. 후세에 사람들이 그의 자손들로부터 책을 빌리면 책 속에는 말라 죽은 이가 수두룩했다. “평생을 책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문장에 대해서 남보다 배나 착실히 공부했으니, 나의 본분에 대하여 영향을 끼친 것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다행히 성현은 집도 부자여서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다 구해서 읽었다고 하니 그의 책 사랑이 대단하다. 사실 집이 부자라면 책 읽기가 쉽지 않다. 다른 재밌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재산 덕분에 그는 많은 책을 사 모았고 또한 그 책들을 다 읽었다. 그가 지은 『용재총화』는 최고의 이야기책 중 하나다. 그런 그의 독서를 방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머릿니였다. 지금이라면 감는 약으로 한 번에 퇴치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좀처럼 어떻게 하기가 어려운 기생충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와중에 근질근질한 것이 꼼지락거린다고 생각해 보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잡아서 책장 속에 끼워 넣곤 했다고 하니 그에게 잡힌 머릿니도 책과 함께할 운명이었나보다.     


  후세에 와서 그의 자손들에게 책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니 정말로 그의 집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집은 과히 사설 도서관이라 할만하다. 내 방에도 책이 좀 있기는 하지만 장식용일 때가 많다. 베스트셀러 몇 권도 눈에 띄기는 하지만 내가 저 책을 읽었는지 말았는지 가물가물하다.     


  요즘 도서관은 일대 변신을 했다. 독서할 때 곁들이면 좋은 커피를 내리는 카페는 물론이고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앉거나 벽에 기대어 독서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언뜻 보면 도서관인지 카페인지 헷갈린다. 게다가 공짜라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다. 워낙 바쁜 세상이라 무료할 일이 없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낸다면 세상의 온갖 지식이 널려있고 ‘나의 본분에 대하여 영향을 끼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도서관에 가볼 일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혹시 죽은 머릿니를 발견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흔적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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