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랑이 눈썹

by 홍생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자연인’이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혼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즐겁게 나온다. 아무 걱정도 없이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머리 큰 윤모 진행자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슬퍼 보인다. 심지어 어떤 출연자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행복하다면서 계속 산속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가만히 보면 모두 개를 키우고 오리나 닭을 기른다. 어떤 집에는 말도 있다.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 세상에서 받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차라리 외롭게 혼자 마음대로 살아가는 게 편하단다.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호랑이 눈썹이라는 제목의 옛이야기가 있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 결혼한 한 나무꾼 홍생이 있었다. 삶이 힘들었던 그는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산에 가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험한 산을 올랐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호랑이가 자신은 사람은 먹지 않는다고 하면서 속 눈썹을 하나 뽑아주었다. 이 눈썹으로 사람을 보면 전생이 보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홍생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서 눈썹으로 아내를 보니 아내가 전생에 암탉이었고 자신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등짐장수 부부가 하룻밤을 묵어가게 됐는데, 두 사람을 살펴보니 남편의 전생이 수탉이었고 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홍생의 이야기를 듣고는 서로 짝을 바꾸어 살았더니 두 부부가 잘살았다.


재밌지 않은가? 그런데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 짝이 맞지 않는 부부는 사실상 같이 살기가 어렵다. 첫 줄이 모든 전후 사정을 말해준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 결혼한 한 나무꾼’에서 이야기꾼은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무작정 “당신과 나는 맞지 않으니 서로 헤어집시다.” 하고는 헤어질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은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가고 나는 나대로 좋은 사람을 찾을 거야, 하고 헤어진다면 이야기는 너무 밋밋하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졌을 리도 없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옛이야기는 그 속에 숨은 뜻이 있다. 홍생을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았던 홍생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이었다. 강에 몸을 던지거나, 다른 방법을 선택하면 쉽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홍생은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선택했다. 사실 우리는 두려워하는 일을 맡지도 않으며 두려워하는 곳에는 가지도 않는다. 고난이 닥쳐오면 극복하려고 도전하다가도 몇 번 실패하면 그만두어 버리기 일쑤다. 홍생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어려움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만큼이나 힘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호랑이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가 호랑이 굴로 찾아가지 않고 다른 쉬운 어떤 일을 선택했더라면 계속 힘들게 살았거나,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호랑이가 아무에게나 그냥 눈썹을 뽑아주었을 리가 없다. (실제로 호랑이에게는 수염처럼 몇 가닥의 눈썹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언젠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당신은 나중에 귀농해서 아내와 함께 자연인처럼 살고 싶다고. 그러자 아내 되시는 분이 “벌레만 없다면 나도 그러고 싶어요.”라고 하셨단다. 아마도 교수님의 꿈은 이루어지기가 어렵겠다. 벌레 때문이 아니라 함께 하겠다는 두 분의 마음 때문에 결국엔 사모님의 말씀을 따를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도 자연인 되기는 글렀다.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 부부의 마음이 잘 맞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벌레를 싫어하니까 그렇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의좋은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