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했더니 뱃가죽에 기름기가 잔뜩 껴있으니 주의하란다. 한마디로 운동은 하지 않고 먹기만 한 결과이며 일종의 위험신호란다. 다행히 그것 말고는 큰 병은 없어서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의사의 말에 겁이 좀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먹는 걸 줄이라고 하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 굵은 칼국수와 갓 구운 파전과 막걸리 냄새 솔솔 풍기는 옥수수식빵이 눈에 어른거려 과연 줄일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에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있다. 우애 좋은 형제가 그해 수확한 볏단을 두고는 서로를 걱정했다. 금방 결혼한 동생이 쌀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형은 동생의 볏단 위에 자신의 볏단을 올려두었다. 식구가 많은 형의 살림을 걱정한 동생은 자신의 볏단을 형의 볏단 위에 쌓아 올렸다. 다음 날 아침에 두 사람은 볏단에 변화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밤중에 볏단을 나르다가 둘이 만나게 되었다. 서로 도움을 준 사실을 안 형제는 우애롭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이야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나도 이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배웠는데, 형제는 서로를 위하며 우애롭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강조하시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지금 읽어 보아도 참 형제간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 누구라도 조금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던 때가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보릿고개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때였으니 형제의 서로에 대한 배려가 더욱 돋보이는 이야기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을 보자면, 형은 갓 결혼한 동생의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동생은 식구가 많은 형의 먹을거리를 걱정한다. 둘 다 걱정하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는 걱정은 상당 부분 해결된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먹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나라님의 가장 큰 걱정이 되겠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구문제도 풀리고 결혼 문제도 해답이 보일 것 같다. 결국, 의좋은 형제는 ‘먹는 문제’ 해결이 만사형통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요즘은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다. 비교 때문이다. 의좋은 형제는 먹는 문제만을 걱정하며 살았다. 비교는 했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이었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비교해서 시샘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잘 산다면 좋겠다는 염원이 둘을 행복하게 했다.
어린 시절 한 밥상에서 마주 앉아 밥을 나눠 먹을 때를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주걱이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적이 없었다. 다만 어머니의 밥그릇이 채워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렇게 컸다. 지금처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배가 부르면 행복했다. 또 고기냐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만 너무 잘살고 있는 건 아닌지, 행여 이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은 아닌지,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다시 곱씹는다. 이런 생각이라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불러오지 않는 것이어서 마음껏 먹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