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일 년 내내 집에 게시하는 후배가 있다. 큰 사업체를 운영하며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따른다. 항상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어떤 일을 할 때 보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며 자신만만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우유부단한 편이다. 저 높이 계시는 분이 이런 일을 할 때는 좋고, 저런 일을 할 때는 싫을 때도 있다. 사는 곳이 영남지역이니까 너는 당연히 붉은색 계열을 좋아하지, 하고 물으면 그것은 분명한 오해다. 내 판단은 그때그때 다르다.
『필원잡기』에 삼봉 정도전의 일화가 있다. 정도전이 새벽 일찍 관아에 나갔는데, 한 짝은 희고 한 짝은 검은 신을 신었다. 서리가 그것을 보고 알려주었는데, 공은 한 번 웃고는 말았다. 일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하인에게 정도전이 말했다. "너는 나의 신이 한 쪽은 희고, 다른 쪽은 검은 것을 탓하지 말아라. 왼쪽에서는 흰 것만 볼 것이요, 오른쪽에서는 검은 것만 볼 것이니, 어찌 해가 있겠느냐?" 하였다. 그의 겉치레를 꾸미지 않는 것이 이러하였다.
정도전이라면 조선의 개국 공신이다. 정몽주와 같이 공부했으나 두 사람은 뜻이 달라 한 사람은 고려의 충신이 되었고, 한 사람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 되었다. 마음이 급했던지 공은 새벽녘에 집을 나서면서 검은 신과 흰 신, 짝짝이를 신고 나왔다. 살다 보면 간혹 그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드문 일이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는 일은 더러 있는 일이지만 신발을 짝짝이로 신는 일은 흔치 않다. 서리가 흠을 지적하자 공은 웃어넘겼고 하인에게 그런 일을 탓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공의 넓은 마음이 엿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당시는 개혁과 개국이 맞물린 혁명의 시대였다. 검은 신을 신느냐, 흰 신을 신느냐 하는 것은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고려의 충신으로 남느냐,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왕을 모시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며 정몽주에게 애걸하는 이방원의 시를 고등학교 시절 외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이방원의 구애에 대한 대답으로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님 향한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겠다.”라는 단심가를 불렀다. 이처럼 흑과 백이 분명한 세상이었다.
그러므로, 정도전의 검은 신과 흰 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고뇌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들이 평상시 그의 인품을 보고서는 흰색이니 검은색이니 왈가왈부했을 것이다. 대궐의 말단 서리조차도 그에게 이쪽인지 저쪽인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며 질책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자신과 출퇴근길을 같이하는 하인에게 너는 아무 상관 말아라. 검게 보고 희게 보는 사람들이 문제이므로, 너와 같은 범인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며 다짐한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흑과 백의 세상에서 두 가지 신을 다 신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사실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런 선택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높으신 분들에게는 목숨이 왔다 갔다하고 선택의 명분이 분명하기도 하지만, 남의 밥 얻어먹고 사는 하인과 같은 나 같은 사람은 그냥 하루가 좀 편안하면 좋겠다. 아무 색이라도 상관없으니 신으면 편안한 신발이면 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