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체질적으로 좀 마른 편이어서 그런지 겨울의 추위를 너무 많이 탄다.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는 수월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겨울 추위는 견디기가 어렵다. 사람이 이러한데 산속에 사는 짐승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걱정된다. 혹독한 추위는 귀신도 춥게 만들었는지 『고운당 필기』에 귀신의 겨울나기 이야기가 있다.
금산(錦山) 사는 농부가 아침에 일어나서 외양간을 보니 네댓 살 아이만 한 귀신이 벌거벗은 채 소를 타고 앉아서 털을 뽑고 있었는데 소는 벌벌 떨면서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농부는 몽둥이를 휘둘러 때렸지만, 번번이 몽둥이만 빼앗기고 털 뽑는 것은 태연자약 그대로여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네가 무슨 귀신인지 모르겠다만 소털을 가지고 뭘 하려는 것이냐? 산 소의 털을 죄다 뽑으면 반드시 죽고야 만다. 내게 여러 해 모아둔 소 털 한 삼태기가 있는데 그걸 네게 줄 테니 산 소의 털은 뽑지 말아라.”라고 타이르고는 털이 담긴 삼태기를 들어다 귀신 앞에 던져 주자 귀신은 풀쩍하고 소 등을 뛰어 내려와 삼태기를 이고 산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울타리 옆을 보니 삼태기를 도로 던져두었기에 열어 보니 모두 산삼이었다. 농부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교서관의 교리 유영철(柳英喆)이 이 일을 말해 주었는데 이것은 바로 산도(山都)*다. 금산이 남녘이어서 이런 괴이한 일이 있는 것일까. 〔출처: 한국 종합 고전 DB〕
귀신이 추웠는지 민가로 내려와 소털을 뽑고 있다. ‘벌거벗은 채 소를 타고 앉아서’라는 부분에서 귀신은 여러 날 추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털로 어떻게 추위를 면해보고자 소털을 뽑았다. 그런데 마침 그때 주인이 그걸 보고는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인간이 귀신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방법을 찾다가 소 주인은 말로 귀신을 타이른다. 그리고 소털이 담긴 삼태기를 던져 주자 귀신이 그 보답으로 산삼을 가져다주는 보은 담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귀신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무턱대고 귀신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귀신이 왜 소털을 뽑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계속해서 소털을 뽑는 귀신과 대결 구도의 상황만 연출했더라면 아마도 소도 죽고 자신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대화를 통해 소를 살리고 귀신은 옷을 따뜻하게 입을 수 있고, 주인은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 데에는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주인은 늘 소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털을 골라주고 빗기며 소를 정성껏 돌보았다. 또한, 나눔에 있다. 비록 귀신이라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모두의 행복을 가져온 것이다. 세상의 이치가 우연히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전에 쌓아놓은 사랑이 빛을 발한다.
날씨가 더 춥지 않다면 좋겠는데, 겨울이 세상 만물을 단단하게 하고 봄의 푸르름을 가져오게 하는 발판이 되니 너무 따뜻한 것만을 바라는 내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래도 모두가 따뜻하게 이 겨울을 슬기롭게 잘 견뎌내면 좋겠다. 거기에 설령 귀신이 포함되었더라도 그렇다.
산도(山都)* 사람을 닮은 원숭이의 일종으로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한다. 《이아》 〈석수(釋獸)〉에서는 산도를 ‘비비(狒狒)’라고 칭하며, 곽박(郭璞)의 주석에는 “그 모양이 사람과 같은데 얼굴은 길고 입술은 검다.”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