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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13. 2024

우리는 누구 덕에 사는가?


  어떤 일이 잘되면 서로가 자신의 공이라고 공치사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다 내 덕이야.” 맞는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간옹우묵』에 한 이야기가 있다. 의원과 스님과 무당이 사람들과 함께 강을 건너가는 배를 탔다. 그런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뒤집히게 생겼다. 그러자 스님은 염주를 굴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쳤고, 무당은 자신이 모시는 신께 빌었으며, 의원은 '이중탕(理中湯)'을 큰 소리로 외쳤다. 얼마 후에 바람이 잠잠해졌고, 사람들은 강을 무사히 건너게 되었다. 그러자 스님은 자신이 부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했으며, 무당은 자신이 모시는 신의 보살핌 덕택이라고 했다. 의원은 배(腹)가 아플 때 쓰는 특효약인 이중탕을 처방했기 때문에 배(船)가 뒤집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로가 자신들의 기도 때문이라며 말했을 때 나루터 관리인은 무당과 스님의 말보다는 의원이 말이 옳다며 술을 대접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원과 스님과 무당이 함께 배를 탈 일이 있었을까마는 이야기꾼은 재미를 위해서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고 아픈 사람을 고치는' 세 사람을 이야기에 집어넣었다. 스님이나 무당은 병든 영혼을 치료하고 의원은 병의 원인을 찾아 직접적인 치료를 하니 당연히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겠다. 환자에게 특효약은 기도가 아니라 치료가 우선이라는 의식이 깔린 셈이다.


  그런데 옛이야기는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세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 걸맞게 기도하고 주문을 외쳤지만, 정작 배가 가라앉지 않은 것은 말없이 배의 균형을 맞추며 노를 저은 뱃사공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야기에는 뱃사공은 아예 등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잘되기를 바라면서 실제로 노력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할 때가 많다. 아프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후에 빨리 낫기를 기도해야 하고, 어떤 일을 벌였으면 그 일이 잘되도록 최선을 다한 다음에 기도해야 먹힌다. 그런데 전혀 노력은 하지 않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닌가.


  또 한 가지 배가 가라앉지 않은 원인은 바람이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의 힘이다. 사람이 아무리 잘 나고,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더라도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


  물론 나도 우리 학교 아이들이 수능을 잘 치면 좋겠다. 하지만 무턱대고 성적이 잘 나오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르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서 좋은 기분으로 시험을 치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나중에 좋지 못한 성적이 나오면 아이들이 선생 탓을 하고 잘 나오면 자신의 노력 덕택이라고 한다면, 이 글을 보여줄 일이다. 그러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일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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