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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17. 2024

호랑이 형님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목소리가 커지면 주먹이 눈퉁이를 향할지도 모른다. 가만 보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자신의 주장만을 말하려고 하면 대화가 될 리가 만무하다. 또한, 대화의 당사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는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통할 리가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속담에서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했으니, 어떤 동물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전래동화에 호랑이 형님 이야기가 있다. 노모를 모시고 살던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호랑이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러자 나무꾼은 꾀를 내어 잃어버린 형님을 만났다며 큰절을 올렸다. 어린 시절 본인의 형님이 호랑이에게 잡혀가서 호랑이로 길러졌는데 그 호랑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며, 어머니가 형님 걱정에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를 잘 모시라고 하며 때마다 멧돼지를 잡아 마당에 던져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일이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무꾼은 산에서 호랑이 새끼들을 만났는데, 꼬리에 흰 천을 매달고 있었다. 사연인즉 자신의 아버지가 사람이었는데 할머니가 죽고 나서 쉬엄쉬엄 앓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호랑이 새끼들을 잘 돌보아 주었다.


  옛날에는 호랑이를 만나는 일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으며, 호환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아마도 호랑이로 인해 피해가 막심해서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호랑이를 인간으로 변신시켰을 수도 있고, 유교 사상이 나라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때여서 효도에 관한 이야기를 강조하다 보니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호랑이를 의인화시켜서 호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장면이다. 호랑이는 본능에 의해 살아가는 동물이며 허기가 지면 소나 개를 쉽게 낚아채 갔던 짐승이다. 사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동물이 말을 알아듣고 인륜을 안다는 가정을 하는 장면은 정말 동화적이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 이야기를 풀어갈 방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호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재미가 없는 불능의 이야기다. 하지만 호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가정을 함으로써 재미가 있고, 교훈도 주는 아주 훌륭한 이야기가 되었다. 나무꾼의 말을 들어주는 호랑이라, 멋지지 않은가? 이 순간의 강자는 당연히 호랑이다. 약자는 나무꾼이 틀림없고. 권력을 쥔 자가 힘없는 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속아준다. 그 사연이 절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무꾼이 호랑이에게 먹혔다면 노모의 삶은 더는 의미가 없는 삶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옛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자세히 곱씹어 보면, 하나도 버릴 게 없다. 하물며 무자비한 짐승이라는 호랑이도 말을 알아듣고 변하지 않는가. 이 장면은 힘 있는 자들에게 제발 백성의 말을 잘 들어라, 하고 만들어 낸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호랑이도 개도 사람의 말을 유심하게 들어준다. 꼭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들이 목소리만 큰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나도 그런 부류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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