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이가 문제다. 어금니에 탈이 나서 치과에 갔더니 임플란트 시술을 권한다. 간혹 이가 시리기도 하다고 했더니 풍치의 전조증상이니까 관리를 잘하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오복(五福)이라고 할 때 치복(齒福)은 속하지 않는다. 옛 문헌에 오래 살고, 재산이 풍족하며, 건강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깨끗한 죽음을 맞는 것을 오복이라고 여겼다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치아가 건강한 것이 강녕(康寧)과 관련 있으니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치복도 복이라 하겠다. 그런데, 강녕을 자세히 뜯어보면 편안할 강(康)자에 편안할 녕(寧)자 이므로 '세상 편하게 사는 것'이 복이다. 그런데 이가 아프니 참 불편하다.
『삼국사기』 왕 편에 보면 신라 3대 왕 유리 이사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2대 왕인 남해왕이 죽자, 태자였던 유리는 석탈해가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했다. 석탈해는 "임금의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은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고로 지혜로운 자는 이가 많다고 했으니, 우리 서로 떡을 깨물어서 누가 이가 많은지 확인해 봅시다."라고 하며 떡을 물었다. 그랬더니 유리의 잇자국이 많아서 왕으로 추대되었다. 김대문이 말하기를 이사금(尼師今)이란 '이의 자국'이라 했다. 왕은 선정을 펼쳤고, 왕이 죽은 뒤 석탈해가 신라 4대 왕이 되었다.
지혜로운 왕을 뽑기 위해 치아의 개수로 뽑았다니 다소 의외다. 지금의 세태로 보자면 어림없는 일이다. 서로 자신이 최고라며 남을 깎아내리는 시대에 왕의 자리를 양보하는 두 왕의 배포가 대단하다. 결국 이 이야기는 ‘양보’에 관한 이야기다. 자리를 놓고 서로 대립했다면 누군가는 왕이 되었겠지만, 왕이 되지 못한 쪽은 원한을 품었을 테고 나중의 일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후일에 두 사람 모두 왕이 되었으니, 양보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또한 치아가 튼튼하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석탈해는 이미 유리 왕의 됨됨이와 건강함을 알고서 그런 제안을 했지 싶다. 유리 왕은 죽기 전에 유언으로 두 아들을 제쳐놓고 석탈해를 반드시 왕으로 세우라고 했다.
그나저나 임플란트 시술을 하고 나서 혓바닥으로 빈 곳을 느껴보니 그 깊이와 크기가 상당하다. 며칠간 밥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치아가 오복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육식을 좋아해서 낳은 결과이니 참아야 할 일이다. 식탐을 양보하지 못한 결과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의학이 발전해서 새 치아로 갈아탈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하다. 임금을 치아의 개수로 뽑는다면 진작에 탈락할 일이지만 의치가 그 자리를 메우니 지금은 누구라도 임금 자리에 도전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정 백성을 위하는, 지혜로운 자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