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부터 고요한 적 없었던 세탁기가
오늘도 띠리리리리
나 다 됐어요 합니다
한숨처럼 늘어진 주름치마
하이힐에 탑승했던 나팔바지
풀물 밴 교복을 걷고
방금 들어낸
표백된 어제의 일들과
뚜벅뚜벅 걸어온 길들을 널어봅니다
종일토록 꽃가루 미세먼지 묻었던 것들
그래도 다시 그 햇볕에 그 바람에 말리면
어제 노상에서 젖었던 바지 밑단도
막차처럼 가슴 졸였던 허리도
꾸깃꾸깃 접혔던 소매의 주름들도
다시 바싹 마르는데
더러운 얼룩이 어지간해도
풀풀풀 세제 넣고 돌리면
텅텅거리고 뒤엉켜도
살살 잘 흘러가고 술술 뚫리는 걸 봅니다
오후 두 시의 햇살에 기죽은 것들
반듯해지고 단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