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힘든 사람이 있다. 만나기가 꺼려지는 사람이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내가 보기 싫다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생계와 관련이 있다면 피할 수 없다. 옛날 숙종 임금에게도 꼴 보기도 싫은 두 대상이 있었던 것 같다.
『청성잡기』 제3권 성언(醒言)편에 보면 숙종 임금에 관해 일화가 있다.
숙종이 일찍이 말씀하셨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제 앞가림도 못하고 궁벽하게 사는 선비와 젊은 과부는 나도 겁내는 대상이다.” 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두려워할 대상을 아신 것이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나이 오십의 선비와 젊은 과부를 데려왔다. 임금이 두려워한 나이 오십의 선비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제 앞가림을 못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궁벽하게 사는 것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오십을 지천명(地天命)이라고 했다. 하늘의 이치를 깨친다는 말이다. 그 말은 달리하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에 맞게 세상을 살아가는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오십이 되어서도 제 앞가림을 못한다고 하니, 나잇값을 못 한다는 말이 되겠다. 또 하나는 궁벽하게 산다는 게 문젠데, 가정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경우다.
다른 두려운 대상은 젊은 과부다. 지금이라면 성차별적인 발언이라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래도 옛날 임금이 했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도 남편이 죽거나 다치고 자식은 어리니 물불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지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임금이 한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단서 조항이 있다. 바로 ‘선비’라는 말이다. 그는 노론과 소론의 틈새에서 골머리를 앓았다. 아마도 이런저런 이유로 붕당정치를 일삼는 노론과 소론의 선비를 빗대어 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는 양반이랍시고 횡포를 일삼는 선비도 있었으니 숙종 임금에게 오십 줄에 접어든 양반들은 골칫거리였지 싶다. 박지원의 '양반전' 태동이 숙종 임금의 말씀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또한, 젊은 과부는 유교를 정면에 내세운 왕조였으니 재가를 쉽게 허락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무작정 허용했다가는 오십 줄의 빈한한 선비들한테 상소문을 받을 일이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숙종 임금의 여자관계를 살펴보면 그가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첫 번째 아내인 인현왕후를 버렸고 두 번째 왕비가 된 장희빈을 다시 폐하면서 여러 여자를 생과부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 오십 줄의 선비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니, 그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노련한 선비와 생과부가 된 여자들(중전들)이었다.
다행히 나는 정당 관계자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어서 아내를 버릴 처지에 있지도 않으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직장에서 내가 껄끄러운 대상이 되고 가정에서 내가 필요 없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