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뭘 자꾸 얼굴 잘생긴 놈을 찾니?, 직업 좋고, 제발 돈 많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 너 할아버지 봐라, 내가 이날 이때까지 고생하잖아!” 어머니가 딸아이를 앞에 놓고 하시는 말씀이다.
명절이면 어머니는 늘 손녀를 앉혀놓고 ‘남자구실’하는 놈을 잘 찾아야 한다며 전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열변을 토하신다. 그 이면에는 아버지와 내가 미덥지 못하다는 의미가 다분히 깔려있다. 아버지는 “어허, 참.”이라고 하시면서 그저 헛기침만 하실 뿐이다.
옛이야기에 ‘구렁 덩덩 신 선비’라는 구전 설화가 있다.
할머니가 아들 낳기를 소원해서 어느 날 아들을 낳았는데 알고 보니 구렁이였다. 불길했으나 아들을 정성껏 길렀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찬 아들이 양반집 셋째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들의 소원대로 중매를 넣었는데 마침 셋째딸이 선뜻 시집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신혼 첫날 밤 아들은 보란 듯이 허물을 벗고 잘생긴 미남자가 되었다. 그렇게 신랑은 낮에는 뱀으로 밤에는 사람으로 살다가 과거를 보러 떠났다. 떠나기 전에 허물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 아내의 두 언니가 그걸 보곤 태워버렸다. 사실을 알게 된 신 선비는 사라졌고 아내는 남편을 찾아 나서게 되고, 저승까지 가서 남편을 찾았지만, 남편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아내와 물 길어오기, 호랑이 눈썹 가져오기 등의 내기에 이겨 남편을 되찾고 행복하게 살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환생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구렁이에서 멋있는 선비로 변하는 변신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물을 벗었으니, 진짜는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양반집 딸은 겉모습보다는 사람의 내면을 알아차렸다는 면에서 기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저승까지 가서 남편을 찾아오는 집념의 여성이다. 실제로 밭 갈기, 물 길어오기 등의 내용은 당시 여성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내용이지만, 호랑이 눈썹까지 가져오는 내용에서는 신인(神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남자를 향한 여인의 사랑 쟁취를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옛이야기는 다양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선 '할머니가 아들을 낳았다.'라는 부분을 통해서 남아선호사상을 엿볼 수 있다. 기도로 할머니가 아기를 가졌고, 그것도 아들을 낳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아들을 원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못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정성을 보자. 구렁이로 태어난 아들을 길렀다고 하니, 남아(男兒)를 귀하게 여겼던 당시 풍속을 알 수 있다. 못난 아들이 양반집 셋째 딸에게 시집가고 싶다고 하자, 양반집으로 찾아가는 장면 또한 극적이지 않은가? 아예 우리라면 시도조차 해 보지 않겠지만, 이 어머니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요즘 같으면 극성스러운 시어머니라며 모두 손사래를 치겠지만 사람을 알아본 셋째 딸은 어려운 시집살이를 선택한다. 못난 아들이나 바보 아들과 양반가 딸의 혼인은 우리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못난 아들이 결국 며느리의 지혜로 훌륭하게 변하는 이야기는 흔한 편인데, 이 이야기는 거꾸로 못난 아들이 오히려 부잣집 딸을 튕기는 형세다. 그러므로 ‘구렁 덩덩 신 선비’는 당시 여성들에게는 최악의 이야기였지 싶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집 아들, 이름난 아들은 나라 아들, 돈 못 벌고 빚 많은 아들은 내 아들이란다. 나는 세 가지 중에 굳이 고르라면 세 번째 아들쯤 되겠다. 그런데 신 선비처럼 낮에는 직장에서 땅바닥을 구르며 뱀처럼 비루하게 살아도 저녁에라도 남자 대접이라도 받으면 좋겠는데, 그마저도 어려우니 참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나 나나 여자들 눈치 보기 급급하니 명절 설거짓거리가 나오면 얼른 옷소매를 걷어붙여야 할 일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허물 벗은 아내가 쓱 사라질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