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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24. 2024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살꼬?

 얼마 전이 결혼기념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음력으로 지내는 내 생일과도 겹치는 날이었다. 결혼기념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생일도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는지 아내가 “그냥 퉁 칩시다.” 한다. 내가 아내에게 줄 결혼기념일 선물과 아내가 줄 내 생일 선물을 서로 주고받지 말고 그냥 넘어가는 말이다. 


  『필원잡기』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문정공 유관(柳寬)은 공정하고 청렴하여 비록 최상의 지위에 있었으나, 초가집 한 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생애가 담박하였다. 공무를 마친 여가에는 후생을 가르치기에 부지런하니,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와서 뵈려는 이가 있으면 고개만 끄덕일 뿐이요 성명은 묻지 않았다.


  공의 집이 흥인문(興仁門) 밖에 있었는데, 그때 사국(史局)을 금륜사(金輪寺)에 개설하였으니, 그 절은 성내에 있었다. 공이 역사를 편수하는 책임자가 되었는데, 일찍이 연모(軟帽)에 지팡이와 신을 갖추고 걸어서 다니며 수레와 말을 타지 아니하였다. 어떤 때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시를 읊으며 오고 가니, 사람들이 그 아량(雅量)에 탄복하였다. 그 절이 지금은 없어졌다. 일찍이 달이 넘도록 장마가 졌는데, 삼대처럼 집에 비가 줄줄 새었다. 공은 우산을 잡고 비를 가리며 부인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 하니, 부인이 대꾸하기를, “우산 없는 집에는 반드시 미리 방비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공이 껄껄 웃었다.


  문정공 유관(柳寬)은 직위가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세종 임금 때에 청백리로 선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공의 집이 흥인문(興仁門) 밖’에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서 그는 성내가 아닌 성 밖 거주자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서울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살았다는 말이다. 비록 우의정을 지냈지만, 퇴직 후 역사 편찬 업무를 보기 위해서 금륜사까지 걸어 다녔다고 하니 그의 청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비가 새는 집에서 우산을 받치고는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 했는데, 그의 아내가 “우산 없는 집에는 반드시 미리 방비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문답에서는 공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엿보인다.


  지위만 높을 뿐 경제관념이라고는 없는 남편을 두고 살림을 살았을 아내를 생각해 보면 공의 한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남편을 끝까지 옆에서 두고 본 아내는 그래도 남편을 존경하고 믿었다. 문화재청의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광주 안씨(廣州安氏)였다고 한다. 두 분의 묘소가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동오리에 있다. 쌍분으로 나란히 모셔져 있는 걸 보면 생전에 두 부부의 정이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인데도 아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 광주 사는 처제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고 돈을 십만 원 보냈다. 그 돈으로 저녁에 동네 초밥집에서 초밥을 배달시켜서 둘이 먹었다. 고작 만 원짜리 초밥에도 감격하는 아내를 보면서 비가 새는 집의 유 공처럼 괜히 미안하기 짝이 없다. 명품 아파트는 꿈도 꾸지 못하고 구축 아파트를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래도 만족하며 살아 준 아내가 고맙다. 유관의 처지도 같았지 싶다. 그런데 그는 우의정에 청백리라는 칭호를 받았으니 나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또 어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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