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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Feb 23. 2024

사랑의 기도

  구십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이 쉬웠다. 경기가 호황이어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사람이 필요한 시대였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서너 군데 합격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골라서 가는 예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엠에프는 많은 사람을 실직자로 만들었다. 나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낮에는 월간지 외판원과 보험설계사로, 밤에는 학원 강사로 뛰었지만,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는지 월급은 이전의 회사에서 받던 급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옛날에 한 순진한 양반이 있었다. 글을 많이 읽어 박학다식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지만, 도무지 뭘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집에서만 지냈다. 그래도 아내는 언젠가 남편이 관직에 오를 것을 믿었다. 하루는 아내가 있는 돈을 긁어모아 사람도 만나고 경험도 쌓으라며 그를 서울로 보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그는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 주막에만 죽치고 있다가 그 돈을 다 축내고 돌아왔다. 아내가 서울에서 누굴 만났는지 물었을 때 그는 거짓으로 아무개를 만났는데 그가 평안감사가 되면 자신도 원님 자리 하나는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얼굴빛이 환해지며 그날 밤부터 밤하늘의 달을 보며 아무개가 평안감사가 되기만을 기도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아무개가 어느 자리까지 올랐는지 물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무개가 진짜로 평안감사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곧장 남편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더니, 남편은 그 친구가 평안감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쁠 것이니 우선 편지부터 보내자고 둘러댔다. 그리고 자신의 우둔함과 아내에게 했던 거짓말과 아내의 십 년 동안의 기도에 관한 내용을 적어 보냈다. 그 편지를 받은 평안감사는 깜짝 놀랐다. 실제로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꿈을 자주 꾸었기 때문이었다. 감사는 곧 사람을 보내 은혜를 갚고 그를 등용했다.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니 말이다. 대단한 일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아내의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내의 기도에 있지 않다. 바로 남편에 대한 믿음에 있다. 아내는 남편을 믿었다. 그가 비록 시골의 보잘것없는 양반으로 살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마도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자기 잘못을 반성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변했음이 틀림없다. 아내에게는 비록 거짓말을 했으나 그간의 사실을 진솔하게 적어 평안감사에게 보냈다. 만약에 그가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면 그런 결과는 없었지 않았을까?


  내가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을 때도 아내는 나를 믿었다고 했다. 한 권의 책을 팔지 못하고 온 날도, 학원의 수강생이 떨어져 나간 날도, 보험 계약을 받지 못했던 날도 늘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아내의 기도와 믿음 덕분에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든든한 배경이 된다. 혹 지금 힘들더라도 누군가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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