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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생 Mar 22. 2024

그리움의 섬, 청령포

  정현종 시인의 ‘섬’은 가장 짧은 시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제목 ‘섬’ 밑에 ‘나(我)’라는 단어 하나만 있기 때문이다. ‘섬’이 ‘나’라는 말은 우리 인간은 그렇게 외로운 존재라는 말이 되겠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시어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섬을 외로움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도 섬이라 할 수 있다. 육지였다면 굳이 우리가 해외를 나갈 때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삼팔선과 동해 서해 그리고 남해에 가두어져 있으니, 외딴섬과 진배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동서가 또 갈라져 있다.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니 여러 개의 섬으로 나누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예전에 최고의 형벌은 사지가 단절되는 거열형이나, 살점을 칼로 베어내는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다소 약한 형벌로는 엉덩이를 매질하는 치도곤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멀리 귀향 보내는 유배라는 형벌이 있었다. 유배라는 말은 당시 한양에서 멀리 떠나보내는 것인데 유배 중에서는 섬으로의 유배가 가장 심한 처벌이었던가 보다.      


 단종이 머물렀다는 영월의 청령포를 다녀왔다. 같이 글을 쓰는 문인들과 함께여서 더할 수 없이 좋은 길이었다. 단종을 뵈러 간다고 해서 비가 내렸는지, 그냥 날씨가 그래서 비가 내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입구에 내려 배를 타고 청령포로 건너가는 와중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그가 오던 날도 이랬을까? 그가 서울의 화양정에서 떠난 날이 1457년 6월 22일이었으니 더위가 한창이었을 테고, 어쩌면 그때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머물렀다는 작은 방에 갓을 쓴 젊은 마네킹이 서책을 꺼내놓고 읽고 있었다. 그의 심경이 어땠을지, 그의 작은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그저 그리워하고 건너다볼 수밖에 없는, 섬은 그런 곳이다. 열어젖힌 문 바깥으로 녹슨 문고리가 있었다. 그가 여닫았을 문고리를 만져보았다. 연꽃의 고리에 걸려있는 동그란 고리. 모든 걸 다 안은 듯한 동그라미가 다른 고리에 제 몸을 걸고 잠겨있었을 것이다. 둥근 세상을 꿈꾸었으나 고리에 걸려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던 젊은 군주가 한숨을 쉬며 누워있었을 방바닥을 쓸어 보았다. 손안에 들어오는 그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시야가 흐려졌다. 그가 더듬었을 새벽과 그가 감당해야 할 저녁 무렵은 어땠을지 감당할 수 없어서 쪽마루에 앉아 눈으로 흙벽을 훑었다. 그가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라. 세상 모든 것들은 외로운 것이니.’라고 하는 환청이 눈 끝에 걸렸다.      


  역사란 그저 섬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둘러보아도 어쩔 수 없는 섬. 소년의 그리움은 섬이 되고 멀리 한양의 동대문 밖 정업원(凈業院)에 머물며 단종을 그리워했던 정순왕후의 그리움은 청령포를 향했다. 두 사람은 비록 같은 하늘 같은 땅에 살았으나 서로의 섬으로만 남은 셈이다.     


 그날 그리움이라는 섬 한 자락 남기고 돌아왔다. 섬에 남았을 그 흔적이 언젠가 나에게 또 손짓하면 지금은 고속도로가 잘 뚫려있고 배도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니 그리워할 새 없이 섬으로 다가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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