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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4. 2016

#10.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별 것 없지만 그냥 좋았다


2007년 8월. 당연히 설렜을 그와의 첫 여름휴가.

가방 속 옷을 수십번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한다. 속옷은 기본이고 평소엔 신경쓰지 않았던 머리끈의 색깔까지 고민된다.


여행이란 건 언제나 설레고 가슴 벅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그것도 그와의 첫 여행이라면 그 가슴벅참을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난생 처음 펜션예약이라는 것을 해봤고 차가 없던 그는 아버지의 낡은 트럭을 빌렸다. 목적지는 서해안.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특별했다.


낡은 트럭의 덜컹거림은 우리의 목소리도 삼켜버렸다. 창문에 머리도 부딪혔다. 날은 더웠지만 에어컨은 시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도 문제되지 않았다. 순간이 소중했고 덜컹거림 역시 흥미로왔다. 어른들은 흔히들 이것을 콩깍지라고 표현한다. 맞다. 그 콩깍지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맞이한 서해바다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촬영된 사진 속 바다는 어두컴컴하다. 그 사진 속 나와 그, 둘만 밝았다. 우리는 그 어두컴컴한 바닷물에서 아이처럼 뛰놀았다.


둘만의 로맨스에 배경따위는 중요치않다. 특별한 여름휴가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니었지만, 홈페이지가 안내했던 것처럼 해수욕장과 5분거리의 펜션은 아니었지만(헬기로 이동할 때 5분이었나보다), 말 그대로 별 것 아니었지만, 그냥 좋았다.


펜션으로 돌아가던 중 차량 기름이 없어 주유소를 찾아 30분 넘게 이동했다. 주유소에서 펜션까지 다시 1시간 가까이 걸려 돌아왔다. 넉넉하지 않았던 20대 초반이라 1인분에 2만5천원이었던 간장게장 정식을 하나만 시켜 둘이 나눠 먹었다.


당시 그는 간장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양보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난 그가 간장게장 하나로 밥 두 그릇을 헤치울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서툼 투성이었던 첫 여행이었다. 로맨틱함은 없었으나 그 로맨틱함이 없어 더 좋았다. 아마 지금에와서 첫 여행과 같은 코스 그대로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면 우린 각자 따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당시에만 느낄 수 있었던 행복감, 그리고 다시는 느낄 수 없기에 더 소중한 행복감이다. 여행보다 서로에게 집중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소중한 감정은 가끔 꺼내보아도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별 것 아니었지만, 별 것 없었지만 그냥 좋았다.

그리고 내가 표현한 '그냥'의 크기는 매우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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