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된다는 것
그와 연애하면서 종종 그의 집에 방문했다. 연애 초기에 난 이미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고 시간이 지날 수록 집에 방문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의 집은 멀지 않아 방문이 쉬웠다. 가끔은 그의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그와 달리 서울에서 홀로서기 중인 자취생이었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으나 두분은 헤어져 따로 계신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와 나의 가족간의 만남은 조금 늦어졌다. 그래도 종종 딸내미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는 엄마는 그와 몇 차례 식사를 함께 했다.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다 보면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이 감정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어진다. 친한 친구부터 시작해 형제, 자매, 나아가 부모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알리고 싶어진다. 나 역시 그랬고, 그도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 가는 첫 발을 내딛었다.
모든 결혼의 '키'를 쥐고 있다고 하는 여자의 아버지. 나 역시 아버지가 엄격한 편이라고 생각돼 쉽게 그를 인사시키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당신의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시키리라 마음먹고 서두르지 않았다.
연애한 지 5년차쯤 되었을 때, 할머니께서 갑자기 분당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갑작스레 소식을 들은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이 끝난 뒤 그의 바이크를 타고 병원을 찾았다. 준비없이 병원에 갔던 터라 그는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때가 그와 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리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그가 궁금했던 아버지는 나를 배웅해주며 날 기다리고 있던 그를 만났다. 어두웠고 차가웠던 밤 공기가 우리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차도 아닌 바이크로 당신의 딸을 데리고 온 그가 얼마나 못 미더웠을 까. 그래도 아버지는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보내주셨다.
첫 시작이 어렵지 그 이후는 어렵지 않다. 그날을 계기로 그는 나와 함께 종종 아버지를 뵈러 갔고, 아버지는 이따금씩 그의 안부를 물었다. 지금도 그와 아버지는 매우 편한(?) 관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어려웠던 그 첫 걸음을 뗐다.
둘 만의 이야기였던 우리의 연애는 5년차를 기점으로 가족들이 인정하는 연애로 변화했고, 거기에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안고 갔다. 이미 우리는 그 때부터 조금씩 천천히 가족이 될 준비를 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연애와 별개로 또 다른 과제다. 말 그대로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 만큼 맞춰가야 할 것들이 많고 부딪힐 일도 많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단해졌던 우리는 그 어떤 연인보다 자신감이 컸다. 향후 에피소드에서 언급할 많은 고비와 힘듦이 있었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은 그 어떤 것들을 이겨 나가기에 충분했다.
그 때부터 우리의 연애에는 '결혼'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과제에 굴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했다. 지나온 5년 외에 또 다른 5년이라는 연애를 더 이어나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