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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2. 2016

#3.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우리는 '썸'을 타는 기간에도 이미 사랑하고 있다

어색하고 짧았던 첫 통화가 지나가고, 서로를 이야기했던 평범한 시간 속에서 그는 나에게 첫 데이트 신청을 했다. 2006년 11월 어느날이다.


누구나 그렇듯 우린 명동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첫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의 첫 영화가 배우 김사랑 주연의 19금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라는 점은 다소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보다 야했던 영화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그 영화의 줄거리는 잘 모르겠다. 올해 온 국민을 울렸던 응답하라 1988의 정환이가 덕선이에게 고백할 때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라고 언급했듯이 내 신경은 온통 그였다.


평소 메신저를 통해 대화할 때 만큼의 친근함도 없었고, 소소한 스킨십 하나 없었지만 난 그냥 설렜고, 좋았다. 눈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어색함은 지금 생각해도 좋다. 누구에게나 첫 데이트의 기억이 소중하듯 나에게도 소중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어색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 긴장했던 탓이었는지, 그는 나와의 첫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던 중에 배가 아파 화장실을 급히 찾았다. 얼굴은 터질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난 급히 휴지를 챙겨줬다. 화장실을 찾지 못했던 그는 날 혼자 둔채 지하철역 화장실로 향했다. 웃음이 났다.


급한 볼일(?)을 마친 그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휴, 죽다 살아났네"라며 웃어보였다. 나도 함께 웃으며 민망함을 날려보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간의 친밀도 차이를 한번에 좁히는 순간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원활한 장 운동때문에 나와의 데이트중 급히 화장실로 사라지곤 한다)


그는 날 집까지 바래다 주었고, 그날 밤 나는 그와의 기억으로 미소짓고, 소리내어 웃었다. 연애를 시작하는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서로 수줍어했고, 첫 데이트에서 그 흔한 스킨십도 없었으며 그냥 그렇게 우린 좋아했다.


며칠 후엔 일을 마친 그가 밤에 집 앞에 찾아왔다. 보고싶다는 이유였다.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청바지로 갈아입고 집앞으로 나갔다. 당시 유행이었던 비비크림도 발라줬다. 집앞에서 우린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역시 날 만나기 전 약 1년간 만난 여자가 있었다. 다툼이 있어 헤어졌는데, 전 남자친구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했다. 당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화가 많이 나있는 모습이었다.


여자들은 대게 그렇다. 아직 못잊었겠지. 잊으려고 날 만나나. 그냥 가볍게 만나려고 번호를 물어봤나 등등 한 가지 이야기에서 온갖 부정적인 것들은 꺼내놓는다. 나 역시 지난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지난 사랑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하다.


30분쯤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춥겠다며 들어가라고 했다. 작별인사를 하던 중, 우린 여느 커플들과 같이 첫 뽀뽀를 했다. 의사를 묻지 않은채 그는 내볼에 입을 맞췄고, 난 그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난끼 가득했던 그도 진중하진 않았지만 "너무 좋다"라고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우린 아직 연인이 아니었지만, 현재 흔히들 말하는 '썸'을 타고 있었지만, 이미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했던 전 여자친구에 대한 걱정은 그 입맞춤 하나로 날아가버렸다. 흔히들 남자는 본능에 충실하다고 하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여자는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한 것 같다.


여기까진 누구나 초반에 겪을 수 있는 풋풋한 이야기다. 우린 그렇게 평범하게 만났고 평범하게 시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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