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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2. 2016

#5.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그날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해가 떴다. 아뿔싸.


술에서 깬 아침은 상쾌할리 없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이는 건 단지 술때문 만은 아니다. 어제의 달콤함과 뜨거움은 사라지고 냉철한 이성과 현실만이 남았다.


"잘 잤어? 불편해서 못 잤지?"


밤새 그의 팔을 짓눌렀을 내 머리의 무게가 신경쓰인다.


"괜찮아요."


안괜찮다. 전혀, 아무것도, 단 하나도 괜찮은 게 없었다. 속도와의 싸움, 아니 감정싸움에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운 순간이다. 그는 이제 나에게 아쉬울게 없으리라. 스물한살에 겪을 수 있는 수많은 파도 중 가장 큰 파도 위에 난 놓여있었다.


짧은 작별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30분 남짓 걸리는 귀가시간은 나에게 3년이었고, 잘 도착했냐는 그의 전화를 받기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30년이었다.


내 시간은 어제밤 카페에 멈춰, 아주 느리게 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해 좋았던 기억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그의 얼굴을 볼 것이며, 아니 다시 볼 수 있을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그냥 그저 그런 여자였다 나는. 걱정이 앞섰다.


몸과 마음을 다 내어주었다는 표현만큼 더 무서운 표현이 있을까. 술이 웬수다. 라고 하기에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그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주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우린 며칠 후 다시 만났다. 역시나 어색함은 어쩔수 없었다. 그는 야경이 아름다운 낙산공원으로 날 데리고 갔다.


야경은 아름다웠으나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함께 있어서 좋다는 표현은 물론, 내색조차도 하지 않게 된다. 조금씩 쌓아왔던 마음이 단 하루로 인해 내동댕이 쳐질까 무섭다.


10년 후인 지금. 가끔 당시를 회상하며 그에게 그때의 그 감정을 이야기한다. 당시 그랬던 나의 솔직한 감정은 현재 그의 놀림감이다.


신기한건 이런 감정이 나 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적용됐었다는 것. 물론 10년 후에야 알았지만.


야경이 아름다웠던 낙산공원. 복잡한 심경이 내얼굴에 드러났는지 그는 씨익 웃으며 '오늘부터 사귀는 날'이라고 답을 내려줬다. 그리고 손을 꼬옥 잡아줬다.


그렇게 우리는 향후 10년간 이어질 아름다운 연애의 첫 스타트를 끊었고, 비로소 야경은 아름다워졌다.


추웠지만 따뜻했던 2006년 12월 20일. 당시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20일 오후 4시 우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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