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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2. 2016

#6.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침묵을 깨고 솔직해지기


여느 초기의 커플이 그렇듯 우리도 풋풋하게, 따뜻하게, 간지럽게 연애를 이어갔다. 매일매일 보고싶었고 매일매일 듣고싶었다.


친한 친구들과 송년회 자리를 갖던 중, 그는 꽃 한송이를 들고 찾아와줬다. 그와의 연애중 처음 받았던 장미꽃이다.


지금도 그는 가끔 꽃을 선물한다. 그가 나에게 꽃을 선물할 때는 전날 큰 잘못을 했거나, 아니면 정말 문득 꽃을 받고 기뻐할 내가 생각날 때다.


10년을 함께하다 보면 꽃 한송이가 가져다주는 감동은 점점 작아질수밖에 없다. 당신의 큰 잘못을 무마시키기에도 너무나 작은 존재다.


하지만 꽃을 선물하기까지의 그의 감정과 노력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싶진 않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 라는 표현은 꽃을 선물하는 그의 감정과 노력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라는 의미다.


그는 유쾌한 사람이다. 살짝 무뚝뚝하면서 로맨틱하다. 지내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애교도 좀 있다. 표현력이 뛰어나다. 다투고 난뒤 자신이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한다. 기분을 풀어줄 때는 꽃을 선물하며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난 그런 그가 좋았고 우린 조금씩 닮아갔다. 나 역시 그 덕분에 유쾌했으며 살짝 무뚝뚝하면서도 로맨틱했다. 애교가 늘고 표현력도 뛰어났다. 다투고 난뒤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했다. 다만 난 꽃을 선물하진 않았다.


당연히 첫 연애를 시작할 때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순 없다. 당장 솔직해지기도 쉽지않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짧을 수록 좋다. 첫 입맞춤이 빨라서 였을까, 서로의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한 후 만나서 였을까, 우리의 솔직함은 빨랐고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밀고 당겼던 우리의 게임은 이미 연애를 시작하기 전 끝났다. 그저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 감사했고 그 시간이 소중했다.


솔직해지는 만큼 다툼의 여운도 짧아진다.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속상함은 그대로 표출했다. 솔직함만큼 빠른 화해법은 없다. 다툰 후 토라져있는 시간이 아까울만큼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2006년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의 첫 새해를 맞이하기위해 종각으로 향했다. 사람은 많았고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 앞에 있던 한 남자가 작은 불꽃놀이 스틱을 가지고 놀다 나에게 불꽃을 떨어뜨렸다. 순간 그는 놀란 얼굴로 화를 냈고 나는 처음 본 그 모습이 무서웠다.


난 괜찮다. 실수인데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냐고 반박하자 내가 다치는 게 싫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래도 앞으로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느꼈을 무안함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욱하는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화를 낼때 무섭다)


우리는 그렇게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솔직함을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감이 굳게 쌓여있었다.


감정에 솔직해질수록 우리는 다투는 시간이 줄었고 하루를 넘기지 않았던 서로에 대한 속상한 감정이 그 다음해에는 3시간, 그 다음해에는 1시간, 지금은 건망증 수준으로 짧아졌다.


토라져있는 시간은 너무 아깝다. 더 솔직해지고 더 표현해야 한다. 침묵은 해결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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