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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어 제국은 왜 슈프림을 샀을까?

에실로룩소티카의 인수 전략 분석 - 전략기획

by 김준성

2024년,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이 또 한 번 주인을 바꿨다. 이번에는 의류 기업도, 리테일 대기업도 아닌, 아이웨어 전문 기업인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였다. 세계 최대의 안경 회사가 왜 슈프림이라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인수했을까? 얼핏 보기엔 낯선 조합이지만, 이 인수는 브랜드 전략 관점에서 매우 구조적인 판단이었다.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 안경 회사에 팔리다

VF 코퍼레이션은 2020년 슈프림을 약 21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러나 스트리트 감성과 희소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졌고, 결국 2024년 약 15억 달러에 슈프림을 에실로룩소티카에 매각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놀랐다. “왜 하필 안경 회사야?” 하지만 이 인수는 단순히 '누가 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샀느냐'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supreme.jpg 사진: QUANTFURY


에실로룩소티카는 안경 회사가 아니다 – 브랜드 제국이다

에실로룩소티카는 흔히 '아이웨어 제조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브랜드 라이선스와 유통망을 지배하는 제국이다.

레이밴(Ray-Ban), 오클리(Oakley) 같은 자체 브랜드 보유

루이비통, 프라다, 샤넬, 디올, 펜디, 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의 아이웨어 독점 라이선스 보유

150개국 이상에 걸친 글로벌 유통 채널 운영

즉, 이 기업은 안경을 파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눈에 띄게 만드는 전략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왜 슈프림을 인수했는가

기업 입장에서 슈프림 인수는 단순한 스트리트 브랜드 확보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전략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판단이었다.

1) Z세대와의 정서적 접점 확보

에실로룩소티카는 오랫동안 명품 브랜드 중심의 아이웨어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상징적 브랜드가 부족했다. 슈프림은 스트리트 패션의 대표주자이자, Z세대가 선망하는 로고 자산을 보유한 브랜드로, 감성적 포트폴리오의 빈 구멍을 메워줄 수 있는 최적의 카드였다.

2) 아이웨어 포트폴리오의 수익성 확장

에실로룩소티카는 브랜드를 직접 소유하기보다는 라이선스 기반으로 운영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슈프림은 이미 아이웨어 제품군(선글라스, 고글 등)에서 반복적인 드롭을 통해 고정 수요층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를 본격적인 고마진 포트폴리오로 확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3) 네임밸류 기반의 브랜드 자산 수익화

슈프림은 제품보다 브랜드 네임밸류가 시장가치의 핵심이다. 노스페이스, 나이키, 루이비통 등과의 협업 제품은 수십 배 리셀 프리미엄이 붙는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슈프림 로고가 붙는 순간 '가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이 '상징 자산'을 아이웨어에 이식함으로써, 제품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브랜드만으로 가격 프리미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독점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슈프림은 운영이 아닌 활용의 대상이며, 에실로룩소티카는 이 브랜드를 정확히 자사 시스템에 녹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인수한 것이다.




아이웨어는 이제 패션의 입구다

명품 브랜드들이 아이웨어를 강화하는 이유는 단순 수익성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웨어는 브랜드 경험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진입 가능한 명품 경험

브랜드 로고가 얼굴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위치에 노출됨

리셀 시장에서도 아이웨어는 거래가 활발하며, 커뮤니티 중심의 소비가 형성됨

스트리트 패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슈프림 선글라스는 이미 드롭 때마다 빠르게 완판되며, 기존 의류 못지않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이 카테고리를 확장해 슈프림 아이웨어를 '계속 반복 소비 가능한' 포트폴리오 자산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브랜드는 이제 제품군이 아니라 자산군으로 운용된다

VF는 슈프림을 대중적으로 팔려다 실패했지만, 에실로룩소티카는 슈프림을 로고 비즈니스로 본다. 자주,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적은 제품을 높은 마진으로 오래 팔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

이는 슈프림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슈프림은 브랜드를 운영해서 키우는 게 아니라, 적절히 활용해서 유지해야 하는 자산이다.

에실로룩소티카는 브랜드 자체를 재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 브랜드가 가진 문화적 가치와 네임밸류를 수익화할 수 있는 포지션에 정확히 배치한다. 그것이 바로 아이웨어라는 접점이다.




결론 – 브랜드는 누가 운영하느냐보다, 어디에 놓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슈프림은 VF라는 대기업 손에서 정체성을 잃었지만, 에실로룩소티카는 그 브랜드를 바꾸지 않고, 어울리는 카테고리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제 브랜드는 단지 잘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제품군보다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가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슈프림을 아이웨어로 수렴시킴으로써, 운영이 아닌 해석을 택했다. 그 선택이, 브랜드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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