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
2022년, 하이브와 블록체인 기업 두나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합작법인 레벨스(Levvels)를 설립했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K-콘텐츠 기업과 블록체인 기술 기업의 결합은 시장에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NFT 열풍은 콘텐츠 IP를 '디지털 자산화'하여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22년 약 100억 원, 2023년 약 18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레벨스는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레벨스는 단순한 NFT 유통 플랫폼이 아니었다. 양사는 각자의 전략적 니즈로 인해 협업을 선택했다.
하이브는 글로벌 팬덤을 디지털 방식으로 수익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위버스가 실물 중심의 커머스에 집중되어 있다면, NFT는 팬의 감정과 경험을 자산으로 만드는 실험이었다.
두나무는 업비트를 기반으로 쌓은 블록체인 기술력과 인프라를 콘텐츠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미술, 게임 외에 'K-팝 팬덤'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양사의 방향성은 겉으론 일치했지만, 내면의 목적은 달랐고 그 간극이 레벨스 구조 전반에 영향을 줬다.
레벨스가 구조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기술 실패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부적합이었다.
2022년 중반 이후 NFT 자산가치 폭락, 사용자 이탈
자산이 아닌 투기 재화로 인식되며 대중 수용성 하락
팬은 ‘경험’과 ‘감정’을 소비하지, ‘자산’으로 IP를 거래하지 않는다
팬심을 수익화하려면 락인(Lock-in)과 커뮤니티 구조가 선행되어야 함
NFT는 소유권만 제공할 뿐, 진입장벽(지갑 개설, 암호화폐 구매 등)이 너무 높았다
반복 구매/사용자 체류를 유도할 콘텐츠 시스템 부재
팬덤이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가 아닌, 기술적 시도에 머무름
레벨스의 문제는 단순히 시장 침체가 아니다. 비즈니스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한 수익을 만들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구독형 수익 구조 부재: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에서 반복 매출이 발생할 설계가 없었다
경험 설계 미비: 팬 경험을 기반으로 한 NFT의 효용성이 불분명했고, 소유 이상의 효용이 부족했다
위버스와의 연계성 단절: 팬 커뮤니티와 NFT 구매가 연결되지 않아 락인 효과도, 전환율도 낮았다
즉, 기술과 콘텐츠가 제대로 통합되지 못했다. 콘텐츠는 감정과 서사로 작동하고, 기술은 시스템과 기능으로 작동한다. 레벨스는 이 둘의 연결을 구조화하지 못했다.
레벨스는 K-콘텐츠 기업과 블록체인 기업의 협업이 왜 어렵고, 또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동시에 향후 기술 기반 신사업의 기획에서 어떤 프레임이 필요한지를 시사한다.
1. '기술'보다 '경험'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NFT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팬덤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가 핵심
2. 'IP'는 팔리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되어야 한다
하이브는 강력한 IP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구조화에 실패했다
3. 신사업은 단일 기능이 아니라 생태계로 설계돼야 한다
커뮤니티, 구매, 보상, 반복 경험이 연결되어야 반복 수익이 가능하다. 모먼티카는 기능만 있었고 ‘여정’이 없었다.
모먼티카는 종료 수순에 들어섰고, 레벨스는 사실상 기능을 잃은 상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라, 기술과 콘텐츠 융합 전략의 구조적 실험이 실패한 사례다.
하이브는 여전히 게임, AI, 위버스 등 신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레벨스 사례는 앞으로의 전략 설계에 있어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긴다.
기술은 기능이지만, 전략은 구조다. 구조는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레벨스는 그것을 놓쳤고, 그래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