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이제 ‘경험’이 아니라 ‘전략 자산’이다 - 전략기획
한때 온라인이 모든 유통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디지털 커머스 시대, 굳이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역행 중이다. 하이엔드 브랜드일수록,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에 더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무신사, 아더에러, 젠틀몬스터, 르메르, 쿠론, 에르메스까지— 성수와 도산공원, 한남동은 말 그대로 ‘브랜드의 전시장이자 체험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경험’의 재정의다. 온라인에서 쉽게 소비되는 정보 대신,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머물고, 공유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접점이 다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피로감, 제품 간 차별화의 한계, 과잉 정보 속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공간화가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랜드에게 오프라인 매장은 더 이상 단순한 매출 채널이 아니다. 그 자체로 고객 락인 전략의 핵심이며, 브랜드 충성도를 설계하는 플랫폼이다.
무신사는 ‘무신사 테라스’를 통해 유저 데이터를 오프라인에서 수집하고, 아더에러는 매장을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방문 자체가 콘텐츠가 되게 한다. 젠틀몬스터는 아예 매장을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켜 리테일의 문법 자체를 바꿔버렸다.
즉, 브랜드는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당신의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경험은 얼마나 공유되고 기억되는가?”
이 질문에 가장 강하게 답할 수 있는 채널이 지금은 오프라인이다.
하이브랜드들의 플래그십 매장은 이상할 정도로 특정 지역에만 몰려 있다. 성수동, 한남동, 도산공원 일대. 공통점은 세 가지다:
1. 높은 감도(센스)의 소비자들이 몰린다.
대중보다 빠르게 브랜드를 알아보고 소비하는 얼리어답터 집단.
2. ‘인스타그래머블’한 경험이 중요하다.
유동인구보다 ‘공유가치’가 더 큰 공간들이다.
3. 브랜드 간 집적 효과(Cluster)가 존재한다.
젠틀몬스터 옆엔 탬버린즈가 있고, 무신사 테라스 근처엔 노티드와 대형 플래그십들이 몰려 있다.
이는 마치 ‘하이엔드 소비의 성지’처럼 소비자 유입을 유도한다.
결국 이 입지들은 단순 상권이 아니라, ‘하이엔드 브랜드 커뮤니티’라는 상징성과 트렌드 가속화 기능을 가진다.
브랜드가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락인 전략을 펼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젠틀몬스터는 전시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다. 도산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품 구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감각 세계를 실현한 조형물에 가깝다. 매장을 방문하는 행위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SNS에 자발적으로 확산된다. 구매보다 ‘공간을 경험했다’는 기억을 남기는 데 집중하며, 고객을 감정적으로 락인시킨다.
반면, 올리브영은 습관이 되는 오프라인을 만든다. 접근성이 뛰어난 상권에 위치하며, 진입 장벽이 낮고, 빠른 소비를 유도하는 동선과 제품 큐레이션을 통해 ‘들렀다가 하나쯤 사는’ 일상적 리추얼을 설계했다. 올리브영이 오프라인을 통해 만든 락인은 감성보다 행동 기반의 반복성이다.
이처럼 브랜드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고객을 락인시키고 있으며, 이 전략적 설계가 곧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만든다.
하이브랜드가 오프라인에 투자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예쁜 매장을 열고 포토존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은 매장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을 설계하고,
소비자 경험을 디자인하며,
관계를 반복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하이브랜드는 그 ‘비효율’을 통해 가장 깊은 락인을 만든다. 공간은 결국, 브랜드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이자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