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날 찾아오는 강렬한 공허함이 있다. 이 공허함에 잠식될 때면 모든 것들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온 나의 루틴들이 깨지고 이 공허한 시간을 채워줄 쾌락을 찾는다. 마치 내가 분열되는 느낌이 든다. 머리로는 이 공허한 시간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지만, 나의 몸은 내 명령을 거부하고 "어서 빨리 쾌락을 받아들여"라며 속삭인다. 하지만 쾌락은 더 큰 쾌락을 부른다. 내가 쾌락에 잠식될수록 나는 더 큰 공허함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점점 더 이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러다 타인의 목소리가 이 공허함을 잠재워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시간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 충만함은 순간적일 뿐이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충만함에 자리를 내어줬던 공허함이 더 커져 나를 집어삼키려 노려본다. 깊은 밤 홀로 침대에 눕자 더 이상 공허함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 가장 무기력한 시간으로 변한다. 잠 마저도 공허함에 의해 쫓겨나 나는 공허와 마주한다.
"무엇이 널 숨 쉬게 만들어?" 평소 수십 번도 더 생각해 본 물음이 더욱더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아니 평소 이 고민에 제대로 빠져본 적이 있던가?, 나는 그동안 이 고민이 시작될 때면 시선을 피했다.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니?" 또 하나의 질문이 나를 향한다. 평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넘긴 고민이다. "넌 도대체 누구야?" 마치 피해왔던 고민들이 모여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아 오늘도 잠은 다 잤다."
공허함이 찾아올 때면 처음엔 자연스레 이 감정을 피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 어려운 것은 매번 찾아오는 공허함은 매번 다른 질문을 던지고, 매번 다른 형태로 사라진다. 마치 나를 놀리듯이,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텅 빈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존재에 대한 심오함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돌아보니 공허함은 늘 나를 쫓아다녔다. 항상 한 걸음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난 늘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공허함이 쉽게 날 찾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던 그 무엇이 달성되는 그 찰나, 날 덮친다. 과거에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이 있다. "당신은 허무함을 느낄 만큼 무언가를 열심히 이뤄내본 적이 있나?"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존재 같다고 느꼈다. 그 목적이 단순 게임이든, 밥을 먹는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무슨 목적이든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한다. 내 인생의 진리라고 느낀 목적이 당장 이 순간에라도 가치를 잃을 수 있다. 난 한동안 운동이 나를 숨 쉬게 만들었다. 운동을 통해 느끼는 강렬한 흥분상태가 나의 생명과도 같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운동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인간이 목적을 잃을 때 즉,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늘 뒤따르던 공허함이 나를 잠식하는 것 같다.
늘 운동으로 채우던 시간에 책상에 앉아 멍하니 노트북을 쳐다보던 중 강렬한 공허함을 느꼈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지만 공부할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켜기만 하면 30분 이상 잡고 있던 쇼츠 영상도 흥미를 잃었다. 일요일 늦은 밤 당장 만날 사람도 없다. 오늘도 강제로 난 공허와 마주한다. "어서 네가 숨 쉬는 의미를 발견해"라고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