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를 만드는 삶

by 청명

이번 달부터 나는 무직 백수를 끝내고 햄버거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제 남들이 직장에 출근할 때 나는 앞치마를 두루고 햄버거 패티를 굽는다. 부모님의 시선이 참 따갑다. 동네 사람들이 나의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볼까 봐 엄마는 집 근처에서 일을 구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 아직도 엄마 친구들은 내가 직장에 다니는 줄 안다. 가끔 한가한 평일 낮에 엄마와 함께 장을 볼 때면, 마주친 엄마의 지인분들이 "아들 휴가라고 같이 장도 봐주나 봐 아유 착해라"라고 칭찬을 건네신다. 그 말에도 엄마는 애써 나의 무직 생활을 숨기곤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거나,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전에도 수 십 번 고민하게 된다. 웬만하면 집에서 나갈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나가는 편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먹어야 한다면, 제일 저렴한 햄버거 단품을 사 먹는다. 커피도 스타벅스에서 메가커피로 바꿨다. 옛날 같으면 포인트 적립이 귀찮다며 영수증도 거절했지만, 이젠 브랜드별 적립 앱을 모두 깔았다. 제일 좋아하던 운동복도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책은 수십 번 고민 끝에 정말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들만 사고 있다. 참 궁핍해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안주를 시킬 때 굳이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추가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먹고 싶은 메뉴를 잔뜩 추가하고 "괜찮아 다 먹을 수 있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식단 관리 목적도 있지만, 이제는 약속 전에 집에서 밥을 먹고 나간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줄이고, 사고 싶은 것을 참고, 부모님의 눈치를 보진 않아도 아직까지 친구들 앞에서 돈이 없다는 자존심은 내려놓지 못했다(그래도 N빵은 한다). 요즘 제일 힘든 것이라면 아마도 이 자존심인 것 같다.

이런 습관이 나의 일상을 바꾸었다. 계획 없는 좌충우돌 P성향이 계획적인 J성향으로 만들었다. 하루의 지출 계획을 머리에 그리고,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가계부를 쓰며 이번 달 사용 가능한 금액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헬스장, 저렴한 24시 카페에서 보낸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정말 생각보다 내가 돈 욕심이 없었구나"이다. 물론 이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어서 더욱 가능할 것이다. 부모님이 아직까지는 소소한 일거리를 하고 계시고, 만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내 몸 하나만 잘 챙기면 된다.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아주아주 자유로운 상황이다.

누군가는 철들지 않은 어린애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나는 어린애로 지내고 싶다. 이 말에는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고 안락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감내하려 한 것은 책임지지 않는 안락한 자유보다는 항상 불안이 뒤따르는 책임을 짊어진 자유 쪽에 가깝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면, 내가 평생 이렇게 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누구보다 충실하게 부모님이 원하는 삶,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 나는 그 반대편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쪽의 삶만 살고서 자유를 논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따가운 시선, 궁핍함,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햄버거 패티를 구을 수 있는 이유는 나름 내 경험에 기반해 나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직장과 촬영을 병행했을 시기에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고, 사고 싶은 물건을 다 살 수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기와 비교하면 나는 다시 지금을 선택할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이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지금에 집착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래도 이런 생활은 내년 초까지만.."이라고 되뇌고 있다. 아마도 내가 진정 원하는 가치는 지금의 자유 그 너머에 있나 보다. 다만 아직 자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직관적으로 느낄 뿐이다.

인간을 개념적 틀에 가두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 들어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이 떠오른다. 마치 내가 어떤 단계의 과도기에 있는 느낌이다. 과도기란 참 혼란과도 같다. 그 과도기를 이겨내면 그간의 혼란과 고통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지만, 반대로 그 혼란으로 영원히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끊임없이 안락함의 유혹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이 책임 없는 자유라고 느꼈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황이라는 이름하에 모두가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누군 간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누군 간 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단지 나는 그 방식이 햄버거를 만드는 삶일 뿐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안락함에 취하지 않으려 경계한다. 그 경계는 늘 불안을 유발한다. 오늘도 난 이 불안 속에서 내가 그토록 바라고 헤맸던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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