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나는 무엇을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갈증은 나를 점점 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혼란의 물결은 어느덧 그럴싸해 보이는 모래성을 다시 무너뜨린다. 내가 제일 잘 할 줄 아는 것은 무너진 모래성 위에 또 다른 모래성을 쌓는 일이다. 반복되는 고민은 마치 존재의 물음을 묻는 것 같다.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간이라면 모두가 고민할법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나는 왜 그토록 이 고민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지, 어쩌면 이것이 나의 숙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줄 알았던 조용한 속삭임이 어느새 내 앞에 앉아있다.
그것이 내 앞에서 속삭인다. "넌 이미 알고 있잖아" 하지만 감히 내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나는 어렴풋이 그 무게를 느낄 뿐이다. 그 무게 앞에서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주는 정답, 인생의 스승들이 주는 조언, 성공한 자들이 내뿜는 스토리는 작은 한숨 앞에서 흩어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누군가의 존재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서 계속해서 나의 모래성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서 나의 모래성은 너무나도 연약하다. 그래서 가끔은 힘에 부친다.
때론 나의 모래성이 콘크리트 덩어리였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쌓아 올린다. 마치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하고 아름다운 나의 성, 하지만 아무리 단단한 성이라도 태풍 앞에서 무너지고, 그 태풍은 내 존재의 뿌리마저 뒤흔든다. 태풍이 처음 불어온 날, 세상의 종말과도 같았다.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한동안 모래성을 쌓아 올리지 않았다. 마치 죽음과도 같았지만 그 태풍이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나를 향해 불어오던 태풍이 어느새 나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겉으론 고요한 지평선이 이어지지만, 그 수많은 태풍이 혼란의 물결이 되어 계속해서 소용돌이친다. 이는 내가 혼란을 잠재우지 못한것일까? 아니면 그 혼란을 품고 의연하게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결국 또 그 물음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끊임없는 고뇌가 반복되다 보면 나의 시선을 밖을 향하게 된다. 끊임없는 성찰과 통찰을 향한 갈망이 부질없는 순간으로 느껴진다. 고뇌의 절정의 순간 스치듯 들려오는 외부인의 목소리가 참 달갑다. 그 달가움에 취한 순간도 잠시, 나는 마치 죄수의 형벌처럼 다시 무너진 모래성 위에 또 다른 모래성을 쌓게 되겠지. 하지만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득히 먼 또 다른 존재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인간은, 타인의 모래성을 쌓아줄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타인이다. 그냥 어렴풋이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