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사 알바를 다녀왔다. 나름 알바에 대한 짬밥이 상당하기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고 자부하지만, 이번 행사 알바는 그간 했던 일들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평소 갈 일이 없는 이태원의 클럽과 같은 환경에서 바텐더를 보조하는 일로, 술을 만들거나 계산을 하는 일은 나름 익숙한 일이지만, 그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평소 나의 세계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묘하게 느껴지는 이질감으로 쉽게 피로를 느꼈다. 일을 끝낸 직후에는 당장 드러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뒤늦게 느껴지는 소화되지 않은 묘한 감각들과 복잡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맴돈다.
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에 든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또한 아르바이트, 대학원, 오래 알고 지낸 지인, 내가 관심 있어하는 모임의 사람들뿐이다. 난 그동안 내게 익숙한, 내가 관심을 갖는 세계와 인접한 사람들과 관계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평소에는 내가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만날 일도 없던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근무 시간이 오후 6시 ~ 새벽 3 시인만큼 그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녁~새벽형 인간의 사람들이었고, 하는 일 또한 바텐더, 배우, 예술가 등과 같이 나에겐 이질적인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 이질감은 피로함으로 다가왔다. 삶의 패턴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거리감을 만들어 냈다. 한동안 나는 삶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에 빠져 있었고, 고요함을 갈망했다. 하지만 그날 마주한 사람들은 삶의 심오한 질문보다는 술을 즐기고, 음악에 빠지고,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환경 또한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왔고 강렬한 비트가 내 귀를 때리다 못해 몸 전체를 터뜨릴 것만 같았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공간은 끊임없이 나의 세계를 침투해 들어오려 했지만 나는 저항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질감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공간에도 익숙한 것이 있었다. 리스닝 파티를 스케치하는 포토들이었다.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과 바텐더들을 쉴 새 없이 담아내는 그 포토들은 지난 시절 나의 열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카메라를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나는 모든 것을 사진에 담으러 노력했고, 마침 이태원에서 열렸던 행사촬영을 담당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떠오른 열정도 잠시 이젠 그 열정을 내 몸으로 모두 받아낼 수 없다는 현실에 서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찰나의 열정은 촬영에 몰입한 포토를 멈춰 세워 잠깐의 대화의 시간을 이끌어냈다. 공통의 관심사로 묶인 잠시의 시간은 서로의 인스타를 공유하며 기약 없는 만남의 약속을 만들었고, 난 모두 소진해 버린 열정을 누구보다도 충만하게 풍기는 그 포토의 모습이 내게 씁쓸하면서도 아련한 여운을 주었다.
그 여운은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만약 내가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이제는 큰 미련이 없다고 생각한 사진에 난 여전히 많은 것들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통해 나에게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이 환경을 즐기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다. “이 부러움은 나 또한 이 환경을 즐기고 싶은 마음인 걸까?”, “나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와 같은 고민들이 시끄러운 음악과 몰려드는 주문 속에서 이어졌다. 지나 보니 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대한 동경심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삶 속에서 내가 누려보지 못한 삶, 그리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처음 이질감과 거리감으로 다가왔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부러움과 질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도 잠시나마 그러한 삶을 누려볼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아쉬움은 아니었을까.
그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한 부러움과 질투의 이질감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말로는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말하면서도 이 파티가 끝나기 전에 이방인에서 벗어나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다. 이러한 욕구는 한동안 내가 몸담고 있던 세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으며,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그들과 함께 어울리려 노력해도 기존에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이미 너무나도 고착되어 버린 걸까,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발을 담그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흐르고 사람들이 하나 둘 빠지며 파티의 끝이 다가왔다. 난 아쉬운 마음에 남은 술을 들이키며 내 몸에 남은 여운들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다. 결국엔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일까,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서 더욱더 큰 거리감을 느꼈고 이 거리감은 행사 종료 후 함께하기로 약속된 뒤풀이로부터 도망치게 만들었다.
새벽 4시, 피로함에 뒤풀이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말해놓고는 해방촌으로 넘어와 맥도널드 햄버거와 맥주를 마셨다. 이태원과는 달리 익숙함으로 가득 찬 고요함과 지인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역시 나는 파티에서 마시는 칵테일보단 편의점 앞에서 마시는 맥주가 좋다.”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날 다독였다. 하지만 이질감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로부터 넘쳐 들어온 수많은 자극과 생각들이 날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겉으론 내가 먼저 거절한 세계에 사실은 내가 적응하지 못해 튕겨져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뒤척이는 새벽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고집이 생긴다. 그 고집은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관이 흔들리지 않기 위한 방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것은 커다란 불안을 유발한다. 그 불안은 곧 자신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하지만 난 최근 그동안 믿어왔던 나의 자아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자아상의 흔들림은 좌절을 불러왔고 무의미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 좌절의 경험이 날 고통의 늪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고착되었던 나의 세계를 함께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하루짜리 알바였지만 난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의심했고, 잠시나마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이 갈망이 어떤 경험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무의미함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