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와 오빠는 8분 차이로 태어난 이란성쌍둥이다.
성별이 다르듯이 모든 면에서도 달라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소화는 눈도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반면에 쌍둥이 오빠인 소철이는 눈과 입도 작아서 외모가 오밀조밀했다. 성격도 소화가 활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소철이는 내성적이며 예민했다. 또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서 한번 자신의 방에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았다. 음식도 소화가 가리지 않고 무엇이나 잘 먹어서 키가 크다면 소철이는 음식을 깨작깨작 먹었고 가리는 음식이 많아서인지 왜소한 체형에 키도 크지 않았다.
엄마는 ‘둘이 바꾸어서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소화는 오빠와 쌍둥이로 태어난 것이 자신의 잘못인 양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화가 떼를 쓰거나 고집부리지 않고 엄마 말을 잘 듣고 쌍둥이 오빠에게도 무조건 양보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쌍둥이 오빠는 이것을 당연시 여겼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라는 속담을 무색하게 쌍둥이 오빠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자기 입에 다 털어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아무리 비싼 장난감일지라도 쌍둥이 오빠가 갖고 싶으면 떼를 써서라도 기어이 갖고 말았다.
쌍둥이 오빠는 집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그동안 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소화지만 사춘기가 되자 마음속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잔잔한 물결이 바람에 영향을 받아서 거대한 파도가 일듯이 그간 쌍둥이 오빠하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불합리한 일들은 점차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서 일어났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같은 쌍둥이인데 오빠와 차별을 받는 것에 관하여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만 소화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누가 들으면 진짜 차별한다고 생각하겠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당최 하지 말아라. 너는 신랑만 잘 만나서 시집가면 그만이지만, 오빤 함 씨 가문을 이어갈 4대 독자야. 오빠가 잘되어야 이 집 안이 잘되는 거야.”
“그동안 오빠와 차별한 것이 함 씨 집안 대를 이을 남자라서 그랬다고요? 그래서 오빠는 돈이 떨어지기도 전에 용돈을 주고 난 사정해야 마지못해서 줬어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내가 오빠보다 더 많이 먹을까 봐 그렇게 눈치를 준 거예요. 오빠는 미안하지도 않은지 당연하다는 듯이 저 혼자만 먹었어요.”
“그거야 소철이가 워낙 입맛이 까다로워서 아무거나 잘 안 먹는 데 비해 너는 뭐든지 다 잘 먹잖아.”
“내가 잘 먹고 건강하다고 해서 차별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 안 가는 것은 학교 문제예요. 그래도 학교만큼은 내가 원하는 여고로 진학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오빠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하고 난 실업계로 입학하게 했잖아요. 졸업하면 바로 취업해서 돈 벌다가 적당한 때에 결혼하라고요. 지금의 엄마처럼 살라고요. 엄마는 내가 엄마처럼 살기를 바랄 만큼 지금 행복해요?”
“행복하다고 물어보니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지만 만족은 한다.”
“뭐가 만족스러운데요?”
“예산에서 우리 집처럼 큰 과수원을 하는 집도 흔하지 않지. 게다가 장남인 소철이는 공부 잘해서 장학금 받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잖아. 그러면 명문대에 들어갈 테고 졸업하면 좋은 곳에 취업해서 돈도 잘 벌겠지. 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해서 돈을 벌 테고. 이만하면 우리 집안도 무시하지 못할 거야.”
“남들은 우리 집안에 전혀 관심도 없어요. 그러니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자신한테 관심 좀 가져 보세요. 엄마도 젊었을 때는 화장도 이쁘게 하고 옷도 잘 입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너무 안 가꾸잖아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
“외할머니요.”
“외할머니는 뜬금없이 너한테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외할머니도 엄마가 딸이니깐 이쁘게 꾸미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겠죠.”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누구 때문인데 그런 다냐.”
“또 외할머니 탓이에요. 좀 전에 엄마는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외할머니를 원망할 필요가 없잖아요. 엄마는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언제나 외할머니를 원망했었어요. 공부를 잘했는데 외삼촌들 공부시킨다고 중학교밖에 못 나왔다고요. 공부를 계속했으면 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 생각나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했던 것처럼 엄마도 나한테 똑같이 하고 있잖아요.”
“외할머니 이야기 꺼내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뭔데?”
“걱정하지 마세요. 난 엄마가 외할머니를 원망하듯 엄마를 원망하면서 살지는 않을 테니깐요. 물론 지금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젠 외할머니 원망하지 말고 엄마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안방에서 가장 좋은 게 화장대인데 화장대만 화려하고 좋으면 뭐 해요? 화장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데요. 저번에 내가 사 준 로션밖에 없던데요. 화장품도 좀 사서 바르세요.”
“그거면 됐지 뭘 사서 바른 다냐?”
“과수원이 바쁠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그러니 엄마 자신도 좀 가꾸어 보세요. 파마는 언제 했는지 부스스한 머리에 맨날 입는 몸빼 바지만 입고 있잖아요. 오빠는 오빠이고 과수원은 과수원일 뿐이지 절대로 엄마 자신이 될 수 없어요.”
“듣기 싫다. 자꾸 그런 소리 하려면 공부하는 오빠 간식이나 가져다주거라.”
“싫어요. 오빠 심부름은 안 하기로 했다고 저번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먹고 싶으면 오빠가 가져다 먹겠죠.”
“성질머리 하고는. 간식 가져다주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는 줄 모르겠다.”
“오빠는 나한테 한 번이라도 잘해 준 적이 있는 줄 아세요? 맨날 오빠한테 양보하라고만 하고 정작 오빠는 나한테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오빠한테 잘해 주지도 않을 거예요.”
“예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 들어서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다.”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어요. 앞으로는 무조건 엄마 말만 따르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야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젠 머리 컸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네. 안 말릴 테니 네 마음대로 해라.”
“나도 그럴 생각이에요.”
소화는 엄마에게 대답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소화는 옷깃을 여미고 천천히 비탈진 곳에 있는 ‘난쟁이들의 사과나무’로 발길을 옮겼다. 늦가을이라서 사과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어서 마을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집 집마다 군불 때서 연기가 몽글몽글 굴뚝에서 올라왔다. 하얀 연기와 대조적으로 온통 붉게 타들어 가던 저녁노을은 한동안 그 위용을 뽐내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것마저 지루한지 어두운 색으로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금방 주위가 캄캄해졌다.
소화는 어두워진 과수원에서 환하게 불빛이 켜져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가 훤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사과 선별 작업이 한창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사과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데 품질 좋은 사과는 소중하게 다뤄져서 상자에 포장되어서 팔려나갔다. 그중에 팔려나가지 못한 사과는 창고의 구석진 곳에 쌓아져서 가마니로 덮여있었다.
선택받지 못한 사과는 또 다른 이름. 파과라고 불려졌다. 창고의 한쪽 구석에서 선별 작업을 지켜보던 소화는 자신이 파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창고에 쌓여있는 파과처럼 자신도 집에서는 이와 같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과는 파과일 뿐 포장지에 싸여서 상품으로 팔려나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소화는 울적한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