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는 손을 위로 뻗고 ‘펄쩍펄쩍’ 뛰어보았다.
사과는 닿을 듯 말 듯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보던 소화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사과를 살살 건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도도하던 사과도 소화의 끈질긴 간택에 못 이기고 떨어졌는데 하필이면 소화의 머리 위로 ‘쿵’하고 떨어졌다.
“아얏! 아이고 머리 아파.”
소화는 손으로 머리 위를 문지르면서 떨어진 사과를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떨어진 사과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사정없이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다. 산기슭에 있는 과수원이라서 가속도가 붙어서 굴러가고 있는 사과를 쫓아서 소화도 달려서 내려갔다. 굴러가던 사과는 평평한 과수원 초입에 와서야 겨우 멈췄다.
소화는 떨어진 사과의 흙을 대충 털고 옷에 문지르고 크게 한입 베어서 먹기 시작했다. 상큼하고 달콤한 사과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소화가 또다시 입을 크게 벌리고 사과를 베어 먹을 때, 새 자전거를 타고 오던 쌍둥이 오빠와 눈이 딱 마주치게 되었다. 겉멋은 들어서 귀에 헤드셋을 두르고 마이마이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면서 왔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씩’하고 웃으면서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소화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헤드셋을 벗어서 목에 걸었다.
“하라는 영어 공부는 안 하고 맨날 팝송만 듣고 있는 것 다 알아?”
“당연하지. 팝송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영어 공부가 잘되거든. 하긴 너는 마이마이가 없으니깐 잘 모르겠다.”
“그렇게 빌려달라고 해도 한 번을 안 빌려주냐?”
“당연하지. 마이마이는 내 소중한 보물이야. 그리고 난 팝송을 들으면서 공부해야 잘 되거든. 필요하면 너도 나처럼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하든가?”
“엄마가 나까지 사 주겠냐?”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말해 보는 게 상책이야. 나도 말하니깐 바로 사 주었잖아.”
“그럴 것 같았으면 벌써 말했지.”
“암튼 앞으로도 마이마이는 안 빌려줄 거야.”
“나도 치사해서 더 이상 빌려달라고 안 할 테니깐 염려하지 마!”
“안 빌려주면 그만인데 뭔 염려씩이나 한다고 그러냐.”
“어련하겠어. 역시 너 다운 대답이었어. 새치기해서 새로 산 자전거 타고 다니니깐 좋냐?”
“누가 새치기했다고 그래? 마침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살수 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네가 타고 있는 엄마 자전거도 좋잖아.”
“그러면 네가 타든가? 꼬박 1년을 기다려서 새 자전거를 사게 되어서 좋아했는데 나 대신 네가 샀잖아. 넌 예전부터 내가 좋은 것을 갖는 꼴을 보지 못했어. 안 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갑자기 자전거가 고장 난 걸 낸 들 어떡하냐?”
“전날까지 멀쩡했던 자전거가 왜 갑자기 고장이 났을까? 너는 알고 있잖아.”
“생각은 자유니깐 네 마음대로 생각해. 그리고 너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넌 키가 커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사과 따 먹기도 힘들었을 거야.”
“어떻게 알았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 참! 너는 키가 작아서 나처럼 사과를 따 먹을 수가 없지.”
“누가 내 키가 작다고 그래! 너하고 똑같거든. 다만 귀찮아서 사과를 안 따 먹는 것뿐이야.”
“과수원집 아들이 사과 따서 먹는 것조차 귀찮다고 하니 어이없다.”
“집에 가면 널려있는 게 사과잖아. 그걸 먹으면 되는데 굳이 수고롭게 따서 먹는지 모르겠다.”
“물론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따 놓은 사과들이 많긴 하지. 그러나 직접 따서 먹는 사과와는 달라. 더 특별하고 맛있거든.”
“난 됐어. 그런 특별한 사과 너나 많이 따서 먹어라.”
“그렇지 않아도 요즘 열심히 먹고 있어.”
“넌 사과를 씻지도 깎지도 않고 그냥 먹냐?”
“사과의 참맛을 알려면 껍질째 먹어봐야 하는데 넌 아직도 이 맛을 모르지?”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아. 그냥 먹으면 껄끄러워서 난 깎은 사과만 먹어.”
“도련님 나셨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이 깎아서 주는 사과만 먹을 거야. 직접 사과를 따서 깎아 먹을 줄도 알아야지. 가끔은 껍질째 먹으면서 사과 씨도 뱉어봐야 사과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는 거야.”
“사과 철학자 나셨네. 그러고 보니 넌 사과를 많이 먹어야 할 이유가 있긴 해. 그래야 ‘사과 같은 내 얼굴’에 좀 더 가깝게 되겠지.”
오늘도 어김없이 쌍둥이 오빠는 소화의 속을 ‘박박’ 긁고 나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화가 난 소화는 먹던 사과를 쌍둥이 오빠를 향해서 냅다 던졌다. 그러자 사과는 쌍둥이 오빠의 등짝을 정확히 맞히고 땅에 떨어졌다. 쌍둥이 오빠는 뒤를 돌아서 소화에게 소리쳤다.
“미쳤냐! 이게 어디 다가 사과를 던지고 있어?”
“네가 열받게 했잖아.”
“내가 없는 소리를 했냐? 거울 좀 봐봐. 시커멓게 탄 얼굴에 머리는 더벅머리인데 하는 짓은 꼭 선머슴애같이 하고 있잖아?”
“남 말하네. 너는 기생 오라버니같이 생겨서 개폼만 잡고 다니고 있잖아. 난 더벅머리일지언정 숱은 많은데 넌 숱이 적어서 어른이 되면 틀림없이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될 거야.”
“뭐라고! 다른 것은 몰라도 대머리가 될 것이라고 한 말은 너무 심하잖아.”
“외모 비하는 네가 먼저 했거든. 그러니깐 먼저 건드리지 마라.”
“너하고는 정말 말이 안 통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또 엄마한테 쪼르르 가서 놀렸다고 일러바치겠네.”
“엄마하고 잘 지내는 것이 부럽지? 너는 엄마하고 안 친하잖아?”
“누가 그래? 나도 엄마하고 나름 친하거든. 그리고 나한테는 아줌마와 아저씨도 있어.”
“그래봤자 그 사람들은 남이야.”
“사람 나름 아니겠어. 남일지라도 가족 못지않게 친하게 지낼 수 있거든.”
“그러셔. 그럴 수 있는지 나는 몰랐네. 그리고 사과는 작작 좀 따 먹어라. 볼 때마다 사과를 따 먹고 있냐. 그렇게 먹다가는 내다가 팔 사과도 없겠다.”
“어이없다. 네가 먹는 사과에 비할까!”
“하여간 우린 쌍둥이인데도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냐! 우선 성별부터 다르니깐 말 다 했지. 애석하게도 너와 나의 교집합은 ‘쌍둥이’라는 것 이외에는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냐! 성별이 달라서 네가 내 몫까지 혜택을 받는 줄만 알아? 네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거야?”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남자로 태어날 것이지 누가 여자로 태어나래.”
쌍둥이 오빠는 비아냥대더니 다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이마이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8분 차이로 태어나서 오빠라고 부르고 있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이름을 불렀다.
“조심해라. 다음엔 네 뒤통수를 맞힐 거야.”
소화는 멀어져 가는 쌍둥이 오빠에게 큰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맛있게 생긴 사과를 따서 ‘쓱쓱’ 옷에 문지른 다음 사과를 먹으면서 집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과수원 초입에는 아줌마와 아저씨가 살면서 과수원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아줌마는 엄마의 먼 친척이어서 엄마와 아빠를 언니와 형부라고 불렀다. 소화는 아줌마와 아저씨를 누구보다 좋아해서 수시로 아줌마네 집을 들락거렸다. 자식이 없는 아줌마와 아저씨는 소화를 친딸처럼 이뻐해 주었다. 소화는 아줌마와 아저씨한테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뭐든지 다 이야기했다. 그러면 아줌마와 아저씨는 소화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소화의 편이 되어서 위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