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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시연 Oct 27. 2024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다.

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쌍둥이 오빠인 소철이는 서울에 있는 4년제인 명문 사립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마을 어귀에는 소철이의 대학교 합격 플랜카드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 인사를 받던 엄마와 아빠는 동네잔치까지 열어서 한턱을 단단히 냈다. 소철이는 한껏 우쭐해져서 집에서도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 하늘 아래 자신만이 대학을 간 것처럼 오만방자했다.


소철이가 화려한 파티의 주인공이라면 소화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신데렐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12시 종이 울리면 누추한 신데렐라로 돌아온 것처럼 소화의 하루하루도 변변치 않게 흘러갔다. 곧이어 소화는 집에서 가까운 사무실에 취직된 것을 알게 되었다. 소화도 모르게 엄마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소화는 어이가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곧 집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젠 너랑 티격태격하는 일도 없게 되었다. 대학교 입학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 내일 서울에 올라가거든. 너는 읍내에 있는 법무사 사무소에 다니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축하해.”

“축하한다고?”

“그런 곳에 취직하기 쉽지 않은데 잘 됐잖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런 곳에 취업했으면 잘 된 것 아니야?”

“난 그곳에 취업하길 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엄마가 맘대로 한 거야.”

“그러면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하겠다. 엄마가 네 취업 자리를 대신 알아봐 줬잖아. 엄마가 아니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취직하겠냐?”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그게 뭔데?”

“말하기 싫어.”

“나도 딱히 듣고 싶지는 않아.”

“어련하겠어. 네 일이 아니면 관심도 없잖아.”

“맘대로 생각해. 그리고 넌 여태껏 ‘축하한다’라는 말 한마디도 없냐?”

“설마 나한테까지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

“쌍둥이 중 한 명이라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잘 된 것 아니야! 그러면 축하해 줄 수도 있는데 너는 꼭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도 없냐?”

“어이가 없다. 그동안 네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봐. 그런 소리가 나오냐? 그리고 너와 내 인생이 다른데 네가 잘되었다고 내가 잘된 것은 아니잖아?”


“분명히 말하는데 나중에 나한테 도와 달라고 사정해도 어림도 없는 줄 알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야말로 나한테 도와 달라고나 하지 마라.”

“어이없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너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겠냐?”

“앞날은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 너무 교만하지 말고 각자 자기의 인생을 잘 살아가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뭘 믿고 큰소리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얼마나 잘 사는지 보겠다.”


소화와 쌍둥이 오빠는 이 대화를 끝으로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소화는 가방에 차근차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막상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러나 소화는 다시 약해지려고 하는 맘을 부여잡고 자신의 꿈을 찾아서 떠나는 게 옳다는 생각에 싸던 짐을 마저 쌌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안방에 있는 엄마한테 갔다. 안방에 들어서자 화려한 자개로 된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그 화장대 아래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읍내에서 쌍둥이 오빠가 대학교에 들어간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거나하게 저녁을 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니?”

“아뇨. 그냥 오면 안 돼요?”

“그건 아닌데 이 시간에 안방에 온 적이 거의 없었잖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나한테는 이 안방의 문턱이 에베레스트산처럼 높게만 느껴졌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니? 누구에게나 문턱의 높이는 똑같지.”

“맞는 말이긴 한데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사람에 따라서 문턱의 높이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나와 오빠처럼요.”

“뚱딴지같은 소리 그만하고 정말 웬일로 온 거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냐?”

“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념으로 와 봤어요.”

“졸업하니깐 좋냐?”


“물론이죠! 이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깐요. 참!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내 일자리를 알아보셨던데요.” 

“다행히 너한테 딱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한발 늦었으면 까닥하다 다른 사람한테 자리를 뺏길 뻔했다.”

“엄만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아세요? 모르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나한테 맞는 일자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여상 나와서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그것보다 더 잘된 것은 없지. 남들은 그런 자리 없어서 난리들인데 복에 겨운 소리 하고 있다.”

“엄마는 여전히 변함없네요. 엄마 잣대로 나를 판단하고 엄마 맘대로 내일을 결정하고 있잖아요. 엄마 꿈이 안 이루어졌으면 안타까워서라도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줬을 텐데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엄마 안에는 오로지 오빠만 있었거든요. 그런 엄마를 바라보면서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게 뭔데?”


“엄만 내가 오빠하고 쌍둥인 것이 그렇게 싫었어요? 아니면 내가 딸이라서 싫었어요?”

“정말 생뚱맞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잘 시간에 와서 그런 걸 물어보니?”

“엄마한테는 어이없는 질문이어도 정말 궁금했어요. 예전에 엄마한테 물어봤을 때, 오빠가 4대 독자라서 차별했다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나요. 쌍둥이지만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오빠와 나를 너무나 많은 차별을 하면서 키웠어요.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쌍둥이로 태어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 한꺼번에 아들, 딸이 태어났으니 기뻤지. 문제는 소철이와 네가 성장하면서 차이가 많이 나고 달랐어. 소철이는 젖을 잘 빨지 않고 울기만 했는데 너는 힘껏 젖을 빨면서 잘 먹었어. 예민한 소철이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힘들게 했는데 너는 웬만하면 울지도 않고 잠을 잘 자더라. 허약체질인 소철이는 잔병치레를 많이 했지만 너는 건강하게 잘 자랐지. 그러다가 6살 때인가 너희 둘이 심한 열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 병원에서 여러 가지 조치해 줘서 너는 열이 내려서 퇴원했고 소철이는 열이 내려가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 소철이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옆 침대에 있던 할머니가 그러는 거야. ‘성별이 다른 쌍둥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여자애가 건강하고 똑똑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집이 그런가 보네.’ 엄마는 이상한 소리 한다고 그 할머니한테 뭐라고 했지. 다행히 소철이는 다음 날부터 열이 내려서 퇴원했는데 살면서 그 할머니의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야.”


“그 할머니 말로 인해서 오빠와 나를 차별해서 키울 이유가 또 생긴 거네요?”


“좀 전에도 말했지만 소철이가 자주 아프다 보니 제대로 클지도 의문이었지. 그러다 보니 소철이한테 신경을 더 쓰게 되었어. 너는 그냥 놔둬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더라. 그래서 너한테 손이 들 간 것은 사실이야.”


“엄마! 아이들한테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해요.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것은 부모라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고 여기에다가 ‘사랑’이라는 것을 줘야 하는 거예요. 사랑은 잘 자라고 있는지 헤아려 주는 마음인데 난 엄마와 아빠한테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아빠는 언제나 무관심했고 엄마의 관심은 오로지 오빠한테만 가 있었어요. 엄마는 오빠하고 나를 대하는 말투와 눈짓 등 모든 게 달랐어요. 처음엔 내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었어요. 엄마가 싫어할 만한 짓은 절대로 안 했어요. 어떻게 해야 엄마가 좋아할지 매 순간 고민하면서 행동했어요. 그러나 엄마는 내 노력에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이 나를 무심하게 대했어요.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와 아빠가 노인이 되었을 때 함께 공유할 추억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플 것 같아요. 그만큼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왔다는 거겠죠. 오히려 엄마와 아빠를 대신하여 아줌마와 아저씨가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줬어요. 그분들은 내가 속상해하면 위로해 주고 기쁜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해 줬어요. 내가 이만큼 잘 클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아줌마와 아저씨가 자식이 없어서 너한테 더 잘해 주었나 보다.”

“그분들은 자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누구한테나 똑같이 사랑을 줬을 거예요. 엄마와 아빠가 하지 못한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디 그 사람들은 착하긴 하지.”

“그나저나 엄마가 오빠한테 신경을 쓴 보람이 있네요. 오빠가 명문대에 들어갔으니깐요.”

“정말 다행이지.”

“그래서 좋아요?”

“요즘 같으면 정말 살맛 나는구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좋다.”

“그렇게 보여요.” 


“무엇보다 소철이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학교에 들어갔잖아. 보는 사람마다 얼마나 좋냐고 지금까지 축하의 말을 듣고 있어. 오늘 저녁만 해도 아빠가 친구들한테 한턱내고 있잖니. 자식 농사 잘 지었다고 다들 부러워하는데 안 좋을 수가 없지. 너도 곧 취업하니깐 월급 받겠지. 그러면 소철이의 학비에 보탤 수 있고 나머지 하숙비랑 용돈 등은 사과를 팔아서 대면 되니깐 얼마나 다행이야. 다 잘 되었지.”


“그럴 줄 알았어요. 서둘러서 내 일자리를 알아본 이유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 예상이 딱 맞았네요.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기뻐한 거군요. 분명히 말하지만 내 취업이 엄마에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에요.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 뭔데?”


“빨리도 물어보네요. 궁금하긴 해요? 그러나 지금은 말하기 싫어요. 확실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하고는 전혀 상관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간섭하지 않고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대로 알아서 살아갈 테니깐요.”


소화는 이 말을 하고 문지방을 넘어서 안방을 나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문지방을 넘은 소화는 이젠 집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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