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와 민아도 염색할 때 원장님이나 디자이너 선생님을 도와서 염색하게 되었다.
염색은 시간에 따라서 색깔이 달라지므로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수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에 문이 열고 젊은 여자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염색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떤 색으로 하길 원하세요?”
“금발로 해주세요.”
“금발이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생각하고 계신 색이 있나요?”
“허니 블론드로 해주세요.”
“파마는 언제 하셨어요?”
“지난주에 했는데 머리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염색하려고요.”
“머리 길이는 자를까요? 아니면 이대로 할까요?”
“긴 웨이브 파마했으니 이대로 해주세요.”
“그래도 상한 머리는 치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손님 생각은 어떠세요?”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옆에 듣고 있던 소화는 원장님이 손님의 상한 머리를 정리할 때 얼른 염색약을 준비하러 갔다. 손님이 원하는 허니 블론드는 색채가 조금 짙은 색의 금발로 노란 머리에 가까운 색이었다. 소화는 적절하게 비율을 맞춘 염색약을 가지고 원장님한테 갔다. 원장님은 소화가 준비해 온 염색약을 보더니 웃으셨다.
“좋아! 색깔 배합을 아주 잘했어.”
원장님이 칭찬하자 소화도 ‘씽긋’ 웃었다. 원장님의 칭찬이야말로 소화에게 가장 힘이 되었고 또한 자신감을 주었다. 소화는 원장님의 가위질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의 목에 보를 둘렀다. 그리고 원장님이 손님의 머리를 빗으로 가르고 염색약을 바르자 옆에서 함께 바르기 시작했다. 염색은 속전속결로 약을 바르고 적절한 시간을 두고 머리를 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소화도 열심히 손을 놀려서 손님의 머리에 염색약을 발랐다. 원장님은 염색약을 바르던 손을 멈추더니 소화를 보면서 웃었다. 그러더니 아예 손님 머리에서 손을 떼셨다. 원장님의 의도를 몰라서 멀뚱하게 서 있는 소화에게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아주 잘하고 있어요.”
그제야 원장님의 뜻을 알아차린 소화는 빠른 속도로 염색약을 손님의 머리에 발랐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늦지 않게 염색약을 바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화는 염색한 뒤처리를 빠르게 한 후에 손님에게 커피를 타다 주었다. 주변을 쓸면서도 시간을 계속 확인했다.
원장님은 손님에 대해서는 소화에게 전적으로 맡긴 듯이 소파에서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화는 시간이 되어서 염색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 보았다. 소화가 봐도 염색이 잘 나온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서 원장님에게 다가갔다.
“원장님! 염색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러면 머리 감겨 드리면 되겠네요.”
“그래도 될까요?”
“확인하는 방법을 지금까지 배웠으니깐 알 테고. 시간도 충분히 주었으니깐 문제 될 것 없을 것 같은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머리를 감겨 드리겠습니다.”
소화는 염색한 손님의 머리를 성심껏 감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원장님이 했지만, 그 뒤로 소화 자신이 염색했기에 신경이 더 쓰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염색한 머리를 감겨보니 색깔이 잘 나와서 안심이 되었다. 감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나니 여자 손님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여자 손님도 너무 맘에 들어서 기쁘다고 하면서 미장원을 나갔다. 그때 민아가 소화의 어깨를 쳤다.
“염색 잘하더라. 처음에만 원장님이 하고 나머지는 네가 다 하던데.”
“응. 그렇게 됐어. 긴장되어서 떨렸는데 원장님이 믿어주니깐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암튼 잘했어. 그리고 네 신발도 멋지다.”
“뭐라고? 신발이 어쨌다고.”
소화는 민아의 말에 자기 신발을 쳐다보았다. 하얀 운동화에 노란색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저번에 민아하고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가서 산 운동화였다. 발이 편해서 소화와 민아는 미장원에서 신고 있었다.
“흰 운동화에 노란색이 떨어지니 이쁘다. 조만간 내 운동화도 알록달록하겠지.”
“호호호. 그렇겠지.”
“이따가 퇴근하고 나서 아까 저 손님처럼 나도 염색해 줘라.”
“알았어. 난 보라색으로 해줘.”
소화와 민아의 운동화는 날이 갈수록 알록달록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