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이라고 세상이 뒤집어졌다.
TV에서는 IMF에 대하여 연일 보도했다. 국가가 부도 직전이라는 소식과 정부가 국제 통화기금 IMF에 자금 지원요청을 했다는 뉴스가 연일 나왔다. 처음으로 듣는 생소한 IMF라는 단어가 무시무시하다는 것만은 누구나 알게 되었다. 자고 나면 어느 기업이 파산했고 은행이 도산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TV를 켜기가 겁이 날 정도가 되었다. 또한 10 가구 중에 4 가구는 실직이나 부도를 겪는 가정들이 점차 늘어났다. 미장원도 손님들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 미장원부터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원장님! 오늘도 손님이 거의 없어요.”
“그만큼 경제가 힘들다는 건데 정말이지 큰일이다. 우린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렇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다.”
“그렇긴 한데 오늘따라 손님이 너무 없어요.”
“할 수 없지. 손님 안 온다고 코 빠져 있지 말고. 시간 많을 때 자기 계발 시간을 가져 봐. 평상시 배우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기분 전환할 겸 커피나 한잔씩 할까?”
원장님 말에 소화와 민아가 커피 마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미장원 문이 ‘벌컥’ 열렸다.
“오랜만이야. 내가 그동안 통 못 왔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에 사모님이 오셨네요.”
“그러긴 할 거야. 내가 정신이 없었어.”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것 있잖아! ‘IMF’라고. 우리 회사도 다 망했지.”
“정말요!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폭삭 망한 거지. 모두 정리하고 나니 시골에 작은 집 하나 살 돈만 남아서 내일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원장님한테 머리 하려고 왔지. 이게 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야. 그러니 오늘 특별히 이쁘게 해 줘.”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오늘 특별히 더 이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박 사장 사모님은 오랫동안 원장님의 단골이셨다. 말은 거칠게 해도 속정이 있어서 미장원에 맛있는 간식도 종종 사다가 주셨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를 곯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소화는 얼른 쌍화차를 타서 박 사장 사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사모님 좋아하시는 쌍화차예요.”
“고마워라. 내가 살아보니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더라고. 그동안 영감 덕분에 잘 살았지. 나이도 있으니깐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딸이 결혼한 거야. 예전에 데리고 와서 염색하고 파마했었잖아. 그때 남자 친구 데리고 온다고 해서 식겁했었는데 집안끼리 잘 아는 집이더라고.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에서 잘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되지도 않는 공부시킨다고 돈 없애고 딸아이 힘들게 했으니 내가 정말 어리석었지.”
박 사장 사모님은 쌍화차를 마시면서 그간의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서 남 말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소화는 사모님과 함께 왔던 딸을 떠올리면서 원장님을 도와서 구르프를 함께 말았다. 굵은 구루프를 사용한 박 사장 사모님의 머리는 우아했다.
“원장님의 솜씨는 여전하구먼. 내가 이 맛에 왔는데 앞으로는 올 수 없어서 아쉽네.”
“왜요? 시골에 내려가셔도 서울에 오시면 꼭 들려주세요. 그땐 제가 더 이쁘게 해 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고맙네. 그러나 시골에 내려가면 거기에 맞게 생활해야지. 거기에도 내 맘에 드는 미장원이 또 있겠지.”
박 사장 사모님은 웃으면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서 카운터에 앉아있던 정준희 언니에게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본 원장님이 정준희 언니에게 말했다.
“정준희 선생님! 장기 단골손님 서비스로 해주세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 미장원에서는 장기 단골손님에게는 마지막 미용비용을 안 받는 전례가 있어요. 지금 박 사장 사모님처럼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
정준희 언니가 다시 지폐를 사모님에게 정중히 건네 드렸다. 사모님은 지폐를 받아서 지갑에 넣고 원장님을 안아주고 나서 미장원 문을 열고 나갔다. 언제나 기사 아저씨를 대동해서 오던 사모님은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모님이 미장원을 나가자 다들 원장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원장님! 진짜 장기 단골손님에게 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원장님은 이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상황에 따라서 생길 수 있다는 말에 원장님이 더 멋지게 보였다.
IMF로 인하여 나라는 나라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뉴스에서 IMF를 잘 극복해야 경제가 회복되고 그래야 나라와 개인이 살 수 있다고 하면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원장님은 금팔찌를 내놨고 소화와 민아도 금반지를 내놨다. 소화와 민아가 우정 반지로 만들어서 끼고 있던 반지였다. ‘금 모으기 운동’은 미장원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연일 화제였다.
“난 우리 애들 백일과 돌에 받았던 반지도 내놨어.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는 거지.”
“난 내 결혼식 때 받은 금목걸이도 내놨어. 남편한테 물어보니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지금 내고 오는 길이야.”
“잘했네. 그런데 말이야. 우리 옆집에 사는 김씨네 알지?”
“응! 알지.”
“그 집도 난리가 났었어.”
“왜?”
“그 집 아저씨 점잖고 인상도 좋잖아.”
“그렇지. 항상 웃는 얼굴이잖아.”
“그런데 그 집 아저씨가 다니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어서 잘렸나 봐. 그런데 마누라가 걱정할까 봐 말도 못 하고 양복 입고 출근한다고 나와서 산에 있다가 퇴근했대.”
“저런! 그 아저씨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어떻게 알았대?”
“그 사람 마누라가 쇼핑하다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동료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아저씨 안부를 물어서 알게 되었대. 퇴근해서 들어온 그 사람한테 물어보니 실직한 게 2달이나 되었다고 하더래. 그래서 어떻게 월급을 가져다주었냐고 물으니깐 퇴직금 받은 것으로 주었다고 하더래. 그 집 마누라가 며칠을 울고불고 난리 치더니 본가가 있는 시골로 내려간다고 어제 이사 갔어.”
“그런 집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실직 사실을 가족들에게 차마 알리지 못하여 양복을 입은 채 산으로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사람들을 ‘등산출근족’이라고 하잖아.”
“요즘엔 미우나 고우나 잘리지 않고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우리 남편이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니깐.”
“그러면 잘해 줘. 바가지나 긁지 말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잘하고 있어.”
날이 밝아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공통된 단어는 IMF였다. 어찌 되었든 전국이 뒤숭숭한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