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남자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방금도 남학생들 한 무리가 와서 커트와 파마를 하고 갔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명칭도 미장원에서 미용실로 불리는 곳도 점차 많아졌다. 여하간 미용실이야 남자 손님들까지 오니 수입 면에서 좀 더 괜찮아졌는데 문제는 옆집 이발소였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남자가 미용실에 와서 머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지금도 남자 손님들이 머리를 하고 가던데.”
“어서 오세요.”
“여기 떼부자 되겠어. 여자 손님만 하더라도 많이 오던데 남자 손님까지 오니 말이야.”
“커트 가격이 싸서 오기도 하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파마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미용실에서는 커트만 해서 값이 싼 거지. 우리 이발소에서는 면도까지 해 주잖아. 여자들은 모르겠지만 면도하려면 번거롭거든. 여하튼 이대로 가다가는 이발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
작달막한 키에 다소 뚱뚱한 체격인 이발소 아저씨 얼굴은 입고 있는 하얀 가운과 대조적으로 어두웠다. 아저씨는 미용실 안을 빙빙 둘러보더니 애써 웃으면서 나갔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미용실은 손님들로 더 북적거렸다.
함께 일하던 민아는 3년 전에 미용실을 개업하면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지금은 원장님과 소화 그리고 정준희 언니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정준희 언니는 의류 매장에서 일하다가 미용 기술을 배우려고 6년 전 미용실에 들어왔다. 소화보다 2살이나 많지만 소화를 선배로서 깍듯이 대우해 주었다. 소화의 미용 솜씨는 나날이 일취월장해서 원장님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소화에게도 단골손님이 많이 생겼다. 지금도 소화는 단골 할머니의 머리를 하고 있다.
“우리 소화 선생님은 머리를 어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내 맘에 쏙 들게 하니 다른 미용실에는 갈 수가 없다니깐.”
“저를 믿고 맡겨주시니깐 저야말로 감사하죠.”
“잘하니깐 맘을 턱 놓고 맡기는 거지. 소화 선생님이 시다 시절부터 내 머리 담당했었지. 어찌나 꼼꼼하게 머리를 감기는지 고개 숙이고 있었는데 허리가 너무 아픈 거야. 그래서 고개를 들었다가 물벼락 맞은 것이 인연이 되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소화 선생님은 한결같이 성실해. 나는 이런 점이 맘에 들어. 그나저나 소화 선생님은 애인은 있는가?”
“아직은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래도 애인은 있어야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져. 아무튼 오늘 머리도 맘에 쏙 드네.”
할머닌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용실을 나가셨다. 할머니의 머리가 끝나자마자 소화가 먼저 식사했다. 미용실에서는 다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시간 나는 사람이 먼저 식사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밥을 먹었다. 밥은 전기밥솥으로 하고 반찬과 찌개는 미리 해 놓아서 차려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미용실에 딸린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방에서 밥을 먹었다.
소화가 먹은 밥그릇을 설거지하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오자 마침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남자 손님은 키가 크고 다소 마른 체형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한 남자 손님은 미장원이 낯선지 쭈뼛거렸다.
“어서 오세요. 머리 하러 오셨어요?”
“예.”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어떻게 머리를 하시려고요?”
“지금 머리에서 조금만 더 짧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지금 머리에서 조금만 커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소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전에 들어온 숙희가 커트할 수 있게 준비했다. 소화는 남자 손님의 머리를 커트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화의 가위 소리는 매우 경쾌했다. 반면 다소 긴장한 남자 손님은 뚫어지게 앞 거울을 바라보다가 막상 커트가 시작하자 두 눈을 꼭 감았다. 마치 ‘내 머리는 당신 손에 달려 있으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하듯이 남자 손님은 커트가 끝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뻣뻣하게 긴장한 남자 손님과 달리 남자 손님의 머리카락은 참으로 부드러웠다. 이윽고 커트가 다 되었음을 알아차린 남자 손님이 눈을 떴다.
“길이는 안 자르고 다듬는 정도로만 했는데 괜찮으세요?”
“아주 맘에 듭니다.”
그 이후로 남자 손님은 소화의 단골이 되었다. 미장원에 오면 언제나 소화에게만 머리를 했다. 소화가 다른 손님의 머리를 하고 있으면 기다렸다가 하고 갔다. 남자 손님은 항상 머리를 다듬는 정도만 했다. 자주 미장원에 왔기 때문에 머리가 자랄 시간이 없었던 것도 있었다.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그 남자 손님하고 소화는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