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통장에 100원도 없다. 나는 미친년이다.
마흔이지만 통장에 100원도 없다.
미친년. 나는 미친년이다.
80년생. 올해 나이 41살. 만으로 40살.
올해부터 만 나이로 한다.
40이나 41나. 똑같은 거 아니야?
심적으로 마흔과 마흔 하나는 갭이 크다.
나처럼 통장에 100원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한 살이다.
마흔이라고 하면
조금이나마 내게 위안이 된 달까?
그래도 아직 마흔이니까?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대의 내가 그린 40대의 나는 이랬다.
안정적인 직장, 직장에 한자리하고 앉아서
꼰대 소리를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과
(*애는 둘 정도? 아들 하나 딸 하나)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세상에 그런 남편은 없다지만 로망)
청약에 진즉 당첨돼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어엿한 인 서울에 내 아파트도 있다.
아이들의 장래와 우리 부부의 노후를 위해
저축도 매달 200씩 하고 있을 거고.
마흔이 되기 전, 그러니까 20대 때
나는 나의 마흔을 이렇게 그렸다.
일단 내가 금수저가 아니고.
남편이 금수저? 그것도 확률이 희박하고.
욕심 안 부리고 지극히 평범한 마흔의 삶을
나는 이럴 거라 생각했다.
아 물론 친구들 중엔 20대에 결혼해서
저렇게 잘 살고 있는 애들도 있다.
(*얼마 전 크게 돈 번, 화려한 마흔을 보내고 있는
내 절친 얘기는 뒤에 하겠다)
나이 마흔에 싱글이라면?
골드미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안정적인 직장. 이건 똑같다.
회사의 중진으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아 물론 인 서울에 내 아파트도 있다.
내 취향이 한껏 반영된 마이 하우스.
난 깔끔한 걸 좋아하니
화이트 톤에 모던 스타일.
심플한 살림에 센스가 묻어나는 가구들.
차는 벤츠 c220 정도 몰겠지.
포르셰니 페라리니 넘 사치스럽잖아.
퇴근길엔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 들러
요가를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키 165에 50kg.
늘씬함을 유지하는 내 비결이다.
매달 천만 원 이상의 월급이 들어올 테니
노후를 위해 월 500씩 저축하고.
남은 500으로 쓸 거 쓰는 풍족한 삶.
집에 매달 100씩 드려야지. 난 효녀니까.
마이 아파트를 제외하고,
통장에 5억은 들어있겠지.
딸린 식구가 있어, 빚이 있어.
족족 저금해서 5억 만들어놔야지.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20대에 생각한 나의 마흔이다.
미친년. 나는 미친년이다.
현재 2020년 11월 9일.
내 나이 마흔.
아직 싱글이다.
남친? 없다.
운동? 그게 뭐예요?
몸무게? 하.......
차? 벤츠 같은 소리 하네.
아파트? 엄마 집에 방 한 칸 얻어 산다.
5억? 으휴 미친년. 통장에 100원도 없다.
저축 말이다 저축.
여태 100원도 저축하지 않았다.
아 물론 청약통장이 있다.
2년 전만 해도 그 통장 안에 천만 원이,
무려 천만 원이 들어있었다.
근데 다 빼서 썼다.
예금 담보 대출로 말이다.
내 돈 내가 대출받는데 뭐? 라며
당당하게 다 빼서 썼다.
나는 백수는 아니다.
25살부터 마흔이 된 지금까지
쭉 열심히 일했다.
나는 방송작가다.
방송작가 17년 차.
이쯤에서 깜짝 놀란 분들도 있겠다.
방송작가 돈 잘 번다던데?
어떻게 통장에 100원도 없어?
(*친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에이 그래도 좀 모았지? 얼마나 모았어?
없다 친구야 모은 돈이 없어.
몇 번을 답해야 믿어주겠니? 없다고 없어!)
보이스피싱이라도 당했나?
사기당한 거 아니야?
주식으로 날렸나?
노놉! 그런 일은 1도 없었다.
열심히 쭉 일했고,
돈도 벌었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나이 마흔에 결혼도 안 했고,
내 집도 없고, 남친도 없고, 돈도 없다.
이런 마흔도 있다는 거다.
그렇다. 나는 미친년이다.
내가 왜 통장에 100원도 없는지,
내가 왜 스스로를 미친년이라고 부르는지,
그 기가 막힌 사연?을 기록해보려 한다.
나처럼 살면 나이 마흔에 희한하게도
통장에 100원도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