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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Apr 08. 2019

도쿄와 인도와 현대인의 광기

후지와라 신야의 '황천의 개'를 읽으며 


 언제부턴가 인간은 어둠을 잊고 산다. 도시인들은 늘 불빛 속에서 살고 있다. 24시간 편의점이 있어서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고, 밤을 지새우며 인터넷을 할 수도 있다. 어둠이 온다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인간을 조금씩 미쳐가게 하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에서 그것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 방랑', '티베트 방랑'등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작가인데 사진작가이면서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깊은 사색에서 나오는 글을 쓰는 작가다.      

 

 ‘황천의 개’를 이야기하려면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5년의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1995년 1월 17일 일본의 고베시가 초토화되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불이 나면서 한꺼번에 6,300여 명이 죽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는데 벌건 불길이 치솟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 광경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약 두 달 후인 1995년 3월 20일, 도쿄에서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다. 한참 출근 시간인 오전 8시쯤, 도쿄 지하철에 신경가스의 일종인 사린(Sarin)이라는 독가스가 뿌려졌다. 일본 관청가를 지나는 히비야선과 마루노우치선,지요다선 등 3개 노선의 18개 역구내에 거의 동시에 뿌려졌다. 13명이 죽고 6천여 명이 부상당했는데 속이 뒤틀리고 식은땀이 흐르고 오한이 나며 시야 협착증을 겪게 되는 후유증을 겪게 된다. 그 이상한 사건을 일으킨 이들은 ‘옴진리교 신자’들이었고 교주는 ‘아사하라 쇼코’라는 인물이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을 1995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그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옴 진리교는 1984년 아사하라 쇼코가 창설한 명상 단체인데, 1955년 생인 아사하라 쇼코는 29세 때 그걸 만들었고, 10년간 교세 확장을 하는 가운데 변호사, 신도 살인 사건을 계속 일으키다가 사린가스를 뿌리게 된다.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일본 정부를 전복하고 천황제를 없앤 후, 진리국을 건국하여 아사하라 쇼코 자신이 신성 법황이 되겠다는 망상을 가졌었다. 그들은 무력으로 그것을 달성하고자 했는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도 만들었고, 핵무기도 구입하려고 했었다.

 옴진리교의 신도 대부분은 젊은 층으로 일본 내 신도수만 1만 명이었고, 모스크바와 뉴욕 등 4개 지역에 해외지부를 갖고 있었다. 자기들 내부에 법무성, 외무성, 노동성, 과학기술성 등 20개 부서를 두면서, 정부 구조까지 갖추었는데 여기에 가담한 젊은이들 대부분이 고학력자. 전문의, 대학 수석 졸업자, 대학원 졸업자, 과학계통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직장에 회의를 느끼고 퇴직한 사람들이어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왜 아사하라 쇼코는 그런 짓을 했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거기에 가담했을까?

 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를 통해서 그것을 파헤친다.  막연하게 취재를 위해 아사하라 쇼코의 고향을 찾아갔던 후지와라 신야는 우연히 ‘미나마타병’의 근거지인 미나마타가, 그 근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미나마타 병’은 화학공장에서 발생한 메틸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병으로, 신경계통에 이상이 오면서 눈이 머는 병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아사하라 쇼코의 시력이 상실된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인을 소개받은 아사하라 쇼코의 친형 만코도 눈이 멀어 있음을 알게 된다. 두 형제는 유독 물고기를 좋아해서 많이 먹었다고 한다.

 두 형제는 ‘미나마타’ 병의 피해자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일본 정부는 거절했다. 년 아사하라 쇼코는 처음에는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비주의에 심취하다가, 인도에 가서 명상 집단을 체험하고 점점 신비주의와 종말론적인 사상에 심취한 후, 명상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나가던 아사하라 쇼코는 추종자들에게 독가스 살포를 지시했다.

     

 후지와라 신야는 젊은 시절 혼돈 같은 인도를 방황했었다. 그는 갠지스 강변에서 인육, 즉 시신을 먹고 있던 개에게 쫓기기도 하고,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우고 난 재를 맛보며 자신이 환영에 불과하다는 각성도 한다. 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종교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번뇌력’, 즉 번뇌의 힘으로 살아간다며 명상 수도자, 종교 사기꾼을 경계한다. 또한 마약을 먹거나 극단의 현실 부정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1960년대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좌절한 일본 젊은이들 중에는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반대로 명상, 종교로 도피하거나 마약에 몰락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후지와라 신야가 인도에서 만났던 어느 일본 젊은이는 이렇게 절규했다.

     

 ‘그저 눈앞의 먹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긋지긋하며, 이런 집단에서 아이를 키워봤자 인간이 태어날 리 없다’


 마약에 심취하며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미쳐 가고 있던 그에게 후지와라 신야는 어느 티베트 승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물질을 과신하지도 말고, 마음을 과신하지도 말며, 둘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 한다고.


 그는 자신과 그들이 모두 인공의 빛으로 가득한 빌딩 숲 속에서 바삭바삭 말라가고, 강제로 표백되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 결과 자신들은 ‘나’라는 어둠을 상실한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것이 과연 일본만의 문제일까? 

 매스컴, 인터넷, 휴대폰 복잡한 인간관계... 우리도 '나라는 어둠'을 잊고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해야 우리는 ‘나’라는 어둠을 찾을 수 있을까?   


 가끔은 모든 관계를 끊고 은둔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가끔은 그것도 덮고 햇살을 즐기며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가끔 은둔이 필요하고 훌쩍 떠나는 여행이 필요하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1인 방송, 오디오 클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육성으로 이야기 듣고 싶으면 아래를 클릭해 주세요.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또 조금 다릅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630




(좀 더 자세하고 깊은 내용을 보고 싶으면 제가 쓴 '중년 독서'(아르테)를 보시면 됩니다.

 제가 중년이 되어 도움을 받았던 20권의 책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나이를 떠나 '삶의 고비'를 넘기는데 도움이 된 책들입니다. 제가 중년이 되어 썼다는 의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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