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소나 May 12. 2024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소리 들어 봤어?

남편이 망했어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속내를 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야말로 어떤 일이든 어떤 이야기든 '전부 다 툭!' 말할 수 있는 사이 말이다. 물론, 내 옆에 있는 배우자와 자녀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에 답답한 말을 담아둔 내용이 가족이야기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이때는 가족이 친구가 될 수 없고, 되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 한 명만 잘 만나도 그 영향력이 제법 크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혹자들이 친구로 인해서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하지 않나 싶다. 사실 뭐 인생... 그까이 꺼, 거창하게 보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뭘 그렇게 대단한 게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비 오는 날, 기분이 센티멘탈해지면 주저 없이 근처 동네 빵집 카페에서 만나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할까! 더욱이 갱년기가 되어보니 날씨 탓인지 호르몬 탓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감정선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지랄 맞은(?)듯한 이 기분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더욱 절실해진다.


출처 픽사베이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친구에 대한 말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중에서 인상 깊은 게 있었다. '진정한 친구를 알아보려면 내가 잘 되고 있을 때 즉 잘 나갈 때 친구를 보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며 시기 질투하지 않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면 그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었다.


왜, 이 글이 인상 깊었냐면 내 경우는 좀 반대였다. 나는 내가 잘 먹고 잘 살 때 보다 내 상황이 많이 어려웠을 때 비로소 주변 지인들이 제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내가 잘 먹고 잘 살 때는 크고 작은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랑삼아 말할 것이고 그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거나 말하는 게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먹고사는데 그 사람들은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서 내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는 남들 앞에 어려운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지만 그때는 어떤 좋은 말을 듣더라도 다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딱 그랬다.


남편 일이 없어지면서 밥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 내 일상의 변화를 남 앞에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성격상 더 그랬다. 제아무리 오랜 기간 만나온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듣기에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남편의 입장도 지켜주고 싶었다. 게다가 굳이 그걸 말해서 내 상황이 좋아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내 상황을 알게 된 언니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일이 있었다.


"야, 좋은 것만 이야기하면 그게 친구니? 힘든 것도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친구지!"


그랬다. 내가 마음을 열어야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또, 혈액형이 스몰 a형이다 보니 내 마음에 감당하기 벅차고 어려운 일을 절대로 입 밖으로 내지 못했고 그런 용기도 없었다. 그런 내가 생각이 바뀌고 용기가 생긴 것은 한 언니의 고백(?)때문이었다. 이 언니는 내가 당시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을 단 몇 달 전에 이미 겪었고 자기 삶을 바꾸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방법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한때 '공감'이란 게 어떤 분야에서든 화두가 되고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다. 물론, 여전히 공감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공감이란 게 글이나 말로만 듣고는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직접 겪지 않으면 그만큼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평범하게 산 사람들 보다는 많은 일을 겪고 산 편이지만 그래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게 공감이었다. 특히, 예고 없이 남편이 일을 그만두게 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어보지 않으면 정말 모를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무슨 일이든 일이 벌어지고 또 그 일이 지나고 나서야 소위 철이 좀 드는 것 같다. 남들이 은퇴하고 나서 재취업이나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거기서 더 나간 집은 자녀들 결혼을 시키면서 살던 집을 팔아서 이사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귀촌을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살았다. 남들은 그러든가 말든가 남편은 '아직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살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일이 터지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지고 뒤늦게 나의 안이한 생각들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는 남편이 언젠가 하는 일이 없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완전한 은퇴를 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살아 나가지?'

'나는 뭐해서 먹고살지?'


출처 픽사베이


그동안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지. 참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그동안 잘못 살아온 나를 자책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를 이끌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드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이런 이야기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좀 슬펐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은 '외로웠다' 는 게 맞겠다. 왜냐하면, 남편이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냈으니 이제 내가 조금이나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는데 50대 아줌마가 도대체 '무엇을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막막했다. 종일 집안일을 하면서도 내내 '돈 벌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틈만 나면 인터넷으로 뒤져보고 정기모임에서 사람을 만나도 내 정신의 절반은 오직 일하는 것, 아르바이트 이런 데에만 팔려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알바', 아르바이트한다는 소리만 들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일인지, 나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부분 젊었을 때 했던 일을 운 좋게 다시 하게 되었거나 예전에 취득해 둔 자격증으로 시간제 알바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보육교사 자격증으로 어린이집 대체 교사일을 하거나 가정집을 방문해서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파트타임 요양보호사였다. 정말 많이 부러웠지만 자격증이 없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 우선, '이런 일을 나만 겪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는 것 같다. 희한하게 이게 또 나름 위안이 된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끼리 속을 터 놓다 보면 이전보다 훨씬 더 친밀한 사이가 된다. 요즘 말로 '찐친'이 된다.


내가 그랬다. 언젠가 절친한 동네언니 두 명과 함께 브런치 모임을 했을 때 일이다. 한 언니가 중요한 전화가 왔다고 긴 통화를 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


"언니, 제주도 살이는 어땠어요?"

"음, 우리는 좋았어. 서울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넘 좋더라!"

"내 주변에서 언니가 제일 멋지게 사는 것 같아요! 정말 엄청나게 부러워요!"

"부러워하지 마. 다 때가 되면 뭔가 지금과 다른 시도를 하게 될 거야!"


출처 픽사베이


언니는 얼마 전 사업장을 정리했다. 아웃도어 판매점을 한 자리에서 20년을 했고 백화점 임대매장 경력까지 모두 합하면 30년 넘게 해 온 일이었다. 직장인이 한 직장에 들어가서 평생 한우물만 파듯이 언니네 부부도 한결같이 한 가지 브랜드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쭉 운영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지금도 TV에서 인기배우가 광고를 하는 유명브랜드다. 그런 매장인데 문을 닫고 일을 그만둔다는 말에 우리는 적잖이 놀랐었다. 나중에 언니가 말해줘서 알았지만 언니네 네 식구가 밥은 먹고는 살았지만 직원들과 월급에 매장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그야말로 남이 보기 좋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 했다.


"한때, 잘될 때는 엄청 벌었지. 그건 또 자식들이 한창 돈 쓸 때라서 다 나갔어..."

"어떤 달은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월세도 벅찼어..."

"월세가 계속 밀리기 시작하니까. 더는 버틸 자신이 없고 마이너스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더라.."


이러니 언니는 매장을 정리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상황이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니 표현에 의하면 '이 꼴 저 꼴 다 힘들어서 접자!'라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언니 생각에는 매장을 닫으면 마음이라도 후련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생각지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바로 여러 은행에서 조금씩 대출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갚아야 할 돈이 그렇게 많았다고 했다.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소리 들어 봤어?"

"통장에서 돈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정말 매일매일 내 심장이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

이전 03화 "남자는 그냥 다 돈 버는 기계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