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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소나 May 13. 2024

반반치킨도 아니고 반반결혼? 이제는 반반효도라고?!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

'일일부독서'면 구중생형극' 즉,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고 말이 있다. 그런데 좀  재미있는 비유지만 내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 해산물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생선 또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물론 이런 입맛이 된 것은 순전히 내 고향 친정집 밥상 때문이다. 친정집 밥상에는 지금은 없어서 못 먹고, 또 비싸서도 쉽게 못 먹는 볼락과 서대가 항상 올라왔었고 그것도 아궁이 숯불에 구워서 담백하고 고소한 게 천하일미였다. 그리고 어떤 국을 끓여도 육고기가 아니라 해물이 주인공이었다.  


"아니, 여보 미역국에 생선이 왠 거야?"


남편이 내가 끓이는 도다리미역국이나 양태미역국을 볼 때마다 기겁(?)을 하며 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촌시럽긴, 이 맛에 한번 맛 들리면 다시는 노린내(?) 나는 소고기미역국은 못 먹을 걸!"


그렇게 나는 입맛이 다른 시아버지와 남편 생일날이면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두 개의 냄비를 준비했다. 미역국을 두 종류로 나뉘어 끓이기 위해서다. 한쪽엔 시아버지와 남편이 먹는 소고기미역국을, 다른 냄비엔 내가 먹을 도다리 또는 양태 그리고 우럭조개(남해에서 부르는 조개명)를 넣어서 끓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지금은 남편이 생선이나 해산물이 들어간 미역국만 먹으려 하고, 소고깃국은 물론 심지어 소고기 자체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족 생일날 미역국냄비는 해산물이 들어간 시원한 미역국 하나로 통일되었다. 


"내가 당신하고 살면서 평생 먹어야 할 해물은 다 먹은 것 같아!"


이렇게 미역국을 비롯해서 반찬에 대한 가족들 입맛이 많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반찬을 만들 때마다 바닷가 출신인 나와 다르게 내륙지방 태생인 시아버지와 남편 입맛을 배려해서 집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내 반찬은 액젓으로 간을 하는 그런 수고가 없어졌다. 참으로 이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반찬 만드는 주부에게 제일 큰 승리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직도 남편하고 맞지 않는 음식? 간식이 있다. 바로 치킨이다.


"아부지는 양념! 엄마는 후라이드!"


출처 픽사베이


다행히 치킨은 반반치킨이란 게 있어서 우리 가족은 야식을 하거나 동네 공원에 앉아서 늘 반반치킨을 시키곤 했다. 반반치킨, 그거 참! 싸우지도 않고 자기 입맛대로 고를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 부부는 치킨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아들이 워낙 좋아하는 최애간식이다 보니 옆에서 그 냄새를 맡고 안 먹을 수가 없어서 먹는 정도다. 그런데, 반반치킨하면 아들 결혼을 앞두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내가 적잖이 놀라며 들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아들 신혼집은 어디야? 전세야? 자가야? "

"결혼식 비용은 어떻게 해?"

"폐백도 없다는데, 애들 신혼여행 경비는 누가 줘?"


그때, 나는 아들 결혼이 예상치 않게 빨라지는 바람에 그 감정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들은 이야기들이라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게 벅차기도 했다. 단, 하나 준비된 것은 내가 20년 전에 언젠가 아들이 결혼하면 신혼집으로 마련해 둔 작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 비용은 아들이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폐백은 생략해서 내가 아들 통장에 따로 2백만 원을 입금해 주며 신혼여행 경비에 보태라고 했다. 


"엄마, 결혼식은 각자 천 오백만 원씩 반반 내서 삼천만 원 안에서 할 거예요!"

"결혼식 밥값만... 참석 인원수 상관없이 양가에서 각각 반반 내기로 했어요!"

"신혼여행은 엄마가 주신 금액을 듣고 저 쪽도 똑같이, 그러니까 반반 주신 거예요!"


"하, 결혼이 무슨 치킨도 아니고! 반반치킨이 아니라 반반결혼이라니!"




"엄마! 우리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할머니 집에 다녀올라고요!"

"엥? 엄청 먼데, 남해를 가겠다고?"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외할머니 집, 그러니까 내 친정집을 다녀오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아들에겐 할머니지만 내 엄마를 챙기는 그 마음씀씀이가 기특하고 사실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런데 자동차도 없이 그 먼 곳을 간다고 해서 같이 갈 생각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좀 고민했다. 더구나 아들이 지금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할머니 집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내가 올 한 해 교회에서 새 가족부를 총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눈치를 보면서 같이 하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으면 어렵게 말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연휴이다 보니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이 생겨서 내가 틈틈이 그 자리를 메워야 했다.


"아들아, 내가 운짱도 하고 할머니 동네도 구경시켜 주고 같이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연휴라서 많이 비네!"

"괜찮아요. 저희들끼리 기차 타고 가서 렌터카 이용해 볼게요!"

"그래그래. 신혼이니까 이것도 너희들끼리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잘 다녀와!"

"네네!"


그러면서 아들이 한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할머니께는 비밀이에요! 깜짝 놀라게 해 드릴 라고요! 하하하! "

"어? 어..."


그렇지만 요맘때 친정집 사정을 잘 아는 나로서 그 비밀을 지켜 줄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는 지금 한창 마늘종을 뽑아서 농협에 수매하는 시기다. 그러니 새벽이슬 맞아가면서 마늘 대 하나하나를 붙잡고 바늘을 찌르며 종을 뽑고 있을 것이다. 또, 밥은 대충 물에 말아서 먹을 것이고 시장에 간 지 한 달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못 판 마늘종은 집 거실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니 그 냄새는 또 어찌할 것인가. 눈앞에 그림처럼 선명한 친정집 풍경을 알면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엄마!!! 지금 마늘종 빼느라 많이 바쁘제?"

"하모하모(그래그래). 지금이 제일 비싸거등!"

"근데, 엄마! 애들이 엄마 보러 남해에 간다 카네!"

"아이고, 이 먼데를 뭐 더러 온다노!"


출처 픽사베이


그러면서 친정엄마는 극구 애들한테 오지 말라고 다시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바빠서 집안 꼴(?)이 꼴이 아니라'라고 덧붙였다. 내 상상 그대로인 모양인 게다. 사정이 그렇다고 하니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 의중을 말했다. 


"괜찮아요. 할머니 사는 그대로 장민이가 봐야죠. 우리 할머니가 저렇게 나를 키웠다고 보여주는 거잖아요."

"아 그래? 그렇지. 그럼 다시 할머니한테 전화해야겠다. 호호호!"

"그리고 엄마! 저도 저 쪽에 똑같이 했어요! 이것도 다 반반 똑같이 하는 거예요!"

"헐... 이것도 또 반반이냐?!"


나는 다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여차저차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엄마 사는 대로 일하고 밥도 평소 엄마가 먹는 대로 밥 먹고 하면 되겠네!"

"아이고 그래도 손주랑 손주며느리가 온다는데..."


아들 장우가 해 준 말이다. 아들이 몇 주 전에 장민이 외할아버지 강원도 시골집을 가서 1박 2일 자면서 같이 식사도 하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민이가 남해 할머니집에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저 집에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할머니 집에도 꼭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뭐든지 '이 집, 저 집 양가 똑 같이'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한 달에 한 번 자는 것도 사돈 집에 똑같이 반반 나누어 자고 선물이나 용돈도 반반씩 똑같이 드리니 절대로 거절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그래그래. 알았어. 아무튼 고맙다! 내가 못 가는데 할머니 집에 가 준대니!"


말은 그렇게 해서 통화를 끊었지만, 내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흥!'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야! 이제는 하다 하다 효도도 반반이냐?"

"나는 네가 신혼집을 줬는데 이건 아니지! 반띵은 심하다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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